[논현로] 정치가 망친 요지경 ‘중남미 경제’

입력 2024-03-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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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로 번성하던 자원 부국들
좌파·퍼주기 정권에 일순간 ‘폭망’
이번 총선 포퓰리즘 걷는 계기 되길

중남미는 자원이 풍부한 풍요의 땅이었다. 그런데 정치가 이곳을 비극의 땅으로 바꾸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정치가 제공하겠다는 포퓰리즘(populism) 탓이다. 나랏돈 퍼주기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존도 심화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당장은 행복하다. 일하지 않아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비용을 치른다. 가장 큰 희생은 젊은 세대가 지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꼽혔다.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미국과 비슷한 1인당 GDP를 가졌다. 유럽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뉴욕이냐, 부에노스아이레스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이 풍요의 나라를 덮쳤다. 후안 페론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집권을 하면서부터였다. 지금은 국민 10명 중 4명은 빈곤상태에 놓였고 화폐인 페소는 휴지조각이 됐다.

벽지를 사는 것보다 10페소짜리 지폐로 도배하는 사람이 생겼다. 마트에 침입한 강도가 점원이 내준 아르헨티나 페소를 “쓸 데 없다”라고 거절한 사건도 있었다. 급기야 지난 10월 취임한 하비에르 말레이 대통령은 중앙은행을 폐쇄하고 달러화를 공식 화폐로 통용시키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베네수엘라는 신대륙을 찾아 나선 콜럼버스의 3차 항해 중에 발견됐다. 정복자들은 수상가옥이 늘어선 그림 같은 풍경이 “베네치아(베니스)”를 연상시킨다며 이곳을 작은 베네치아라는 의미의 베네수엘라로 이름 지었다. 한때 세계 최대의 원유매장량(2016년 3022억 배럴)을 자랑하기도 했다. 중남미 제1의 부자국가였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의 90% 이상이 식량이 없어 허덕이는 국가로 변해버렸다. 3000만 인구 중 500만 명이 배가 고파 국경을 탈출했고 국민들의 몸무게가 평균 11kg씩 줄었다고도 한다.

1950년 1인당 GDP가 세계 4위(7424달러)였던 베네수엘라는 가난하려도 가난해질 수 없는 나라였다. 경제폭망의 주역은 쿠데타로 집권한 우노 차베스와 그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였다.

그들은 민중의 자본통제를 선언하며 외국기업과 대기업을 국유화했다. 무상의료를 실시했지만 병원과 약국에서는 간단한 약품조차 구하기 어렵게 됐다. 우호매체를 앞세워 국민을 선동하고 반대매체를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탄압했다.

나랏돈은 여론의 환심을 사는 데 쓰고 국민들은 찍어대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환호했다. 물가가 한때 137만%나 치솟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칠레는 부유하고 자유로운 국가였다.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의 35%를 보유하고 농축산물 생산의 90% 이상을 수출해 “남미의 오아시스”로 불릴 정도였다. 필자도 칠레 경제를 연구하기 위해 이곳에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이 나라에 포퓰리즘을 촉발했다. 좌파 미첼 바첼레트 정부는 대규모 공공서비스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육까지 공짜로 받게 했다. 의료, 주거 보조금을 확 늘리며 당시 공공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세 배가 넘었으니 재정이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러자 연평균 5.3% 성장하던 경제가 1.7%까지 주저앉았다. 반세기 동안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번성하던 칠레의 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 모든 경제폭망의 배후에는 정치가 있었다. 정치가들의 부패한 손에 의해 기업이 사라지고 곳간이 비워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권력을 바꾸기도 어려웠다. 주머니에 굴러 들어온 나랏돈에 도취한 대중은 열광했고 더 많은 보조금을 약속한 부패한 독재자들에게 또다시 표를 몰아줬다.

한때 국내에서는 베네수엘라 바람이 거셌다. 베네수엘라는 인류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좌파 진영의 찬사가 넘쳤다. 차베스에게 배워야 한다는 식의 직설이 잇달았고 공영방송 KBS는 현지 취재로 차베스를 칭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지도자의 오판과 위선, 국민의 이기심과 무지가 빚어낸 “국가의 자살”(미국 포린어페어스)이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이후 잠잠했던 중남미가 이번 선거판에 소환됐다. 이재명 대표가 이번 선거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꼴 난다고 해서다. 그렇잖아도 우리는 국가부채가 1000조 원을 넘고 1분마다 1억 원씩 빚이 늘어나는데도 포퓰리즘 공약이 넘친다. 모처럼 조성된 중남미 재현의 포비아가 이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조명되고 우리나라를 덮친 포퓰리즘의 망령을 걷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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