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변호사가 뭘 안다고”…모욕‧협박 당하는 ‘극한직업’ 변호사 [서초동MSG]

입력 2024-04-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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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한 변호사가 살인미수죄로 고소당했다. 고소인은 이 변호사가 맡은 이혼 사건 의뢰인의 상대방. 그는 ‘변호사가 내 피를 말려 죽이려 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변호사를 고소했다.

이처럼 의뢰인 또는 상대방이 변호사를 괴롭히는 일은 서초동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평생 한 번 겪을까 하는 소송이나 법적 문제에 휘말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분노의 화살을 변호사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송사의 상대방이 소송의 결과나 소송 과정의 서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어떤 소송 상대방은 변호사가 서면을 낼 때마다 ‘왜 거짓말을 지어내느냐’며 전화로 따져 물었고, 한 형사사건의 피의자는 같은 사건의 다른 피해자들 합의금과 비교하며 ‘왜 이것밖에 못 받느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자신을 사건 당사자의 가족이나 친척이라고 소개하며 사건의 진행 상황을 묻는 전화 통화도 자주 걸려온다. 이런 전화 중 대다수는 상황을 염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다. 설령 사건 의뢰인의 부모나 배우자 등 가까운 가족이라 하더라도 변호사는 비밀유지의무 상 의뢰인에 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의뢰인의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해도 사건 및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A 변호사는 한 부부의 이혼 소송에서 여성 측 변호를 맡았다. 남성의 외도로 인해 시작된 소송이었는데, A 변호사가 부부 관계가 회복되는 조정을 성사시켜 이혼 소송도 취하하게끔 했다. 그런데 조정 다음날 상간녀의 어머니가 A 변호사의 사무실에 찾아와 “내 딸 인생은 어떻게 할 거냐”라며 항의를 한 일도 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B 변호사는 종중의 분쟁으로 인한 소송을 맡게 됐다. 어느 날 재판이 끝난 뒤 B 변호사가 법정을 벗어나고 있었는데, 유학자복을 입은 연세 지긋한 종중원 수십 명이 변호사를 둘러싸더니 “어린 X가 뭘 아냐”며 삿대질을 했다. 그렇게 이어진 항의에 B 변호사는 상당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털어 놓았다.

C 변호사는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의뢰인의 배우자로부터 한참을 시달렸다. 전과 경력이 많은 그는 변호사에게 “당신이 그러고도 애미냐. 당신의 두 딸을 가만 두지 않겠다”며 협박했다. C 변호사는 결국 자녀들을 먼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22년 9월 6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진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9월 6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진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뉴시스)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는 많은 변호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2022년 6월 9일 대구지방법원 인근 한 변호사 사무실에 50대 남성이 불을 지른 사건이다. 이 남성은 민사 소송에서 패소하자 상대방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었고,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살인을 계획했다. 이 사고로 이 남성을 포함해 7명이 사망했고 5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의 폭언과 협박, 폭행에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대한변호사협회는 가스분사기 등 호신용품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도 했다.

변호사들 사이에는 묵시적 수칙이 있다. 재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며 소송 상대방 의뢰인의 말에 응대하지 않는 것이다. 원한을 품은 상대방 의뢰인이 법정 밖에서 어떤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녹음기를 이용해 몰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난 뒤 상대방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는 것은 ‘감정이 나빠서’보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변호사는 “변호사는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간의 갈등과 감정적인 부분도 다뤄야 한다”며 “사건을 다루다 보면 의뢰인 뿐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적인 반응도 겪게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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