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떠나자 “대금 못 줘”…서울대·성모병원 간납사 횡포에 의료기기사 휘청

입력 2024-04-0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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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경영 악화로 대금 지급 시기 일방적 연기…“울며 겨자 먹기로 수긍”

▲지난달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지난달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의사들과 정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애먼 의료기기 기업들의 등이 터졌다.

대학병원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하면서 의료기기 업체가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간 의료기기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간접납품사(간납사)’의 갑질 문제가 의·정 갈등과 맞물려 심화하는 상황이다.

1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협회)는 “의료기기 업체의 줄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간납사의 횡포에 중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최근 서울대학교병원 계열 간납사 ‘이지메디컴’은 의료기기 업체들에 대금 지급 시기를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라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의 자금압박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계열의 ‘오페라살루따리스’도 결제가 지연될 수 있음을 의료기기 업체들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대학병원 간납사들을 시작으로 업계에 대금 결제 지연 통보가 확산할 것으로 협회는 예상하고 있다.

의료기기 간납사는 병원과 의료기기 업체의 중간에서 의료기기, 소모품, 기타 용역 등의 구매업무를 대행하는 법인이다. 미국 의료기기 시장에서는 간납사와 유사한 GPO가 거래와 재고관리 전반을 책임져 병원의 업무 과중을 덜어준다.

하지만 국내 간납사는 병원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계산서만 발행해 이익을 취하는 ‘페이퍼 컴퍼니’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의료기기 기업들은 간납사를 통한 거래 관행이 업계 성장과 투명 거래를 저해하는 악습이라고 비판해 왔다.

현행 법률을 고려하면, 병원이 어려워 간납사가 대금 결제를 지연한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법 제20조(요양급여비용의 심사·지급)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의료기관은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심사청구 후 40일(정보통신망을 통하여 통보하는 경우에는 15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받고 있다.

이에 협회는 “법률을 고려하면, 간납사가 자금압박의 사유로 결제를 지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의료기기 업체들에 심각한 자금순환의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기기 기업들은 해당 의료기관과 계속 제품공급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처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일방적인 결제조건 통보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협회측 자료 및 전자공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내 300병상 이상 민간 종합병원 68곳 중 25곳 병원(36.8%)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업체가 병원 재단 소유주, 소유주의 자녀 등 가족이 운영하는 간납사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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