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Law] “성범죄 피해자 진술로만 유죄 판단 안돼” 천대엽 판결 이후 어떤 파장이?

입력 2024-04-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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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이 내린 성범죄 사건에 대한 판결에 법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18년 이후 피해자의 진술에 많은 신빙성을 부여하던 다수의 법원 판결이 쏟아졌는데,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그간의 판례와 달리 형사법이 대원칙을 다시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관구 법무법인 LKB & Patners 대표변호사에게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성범죄 사건에 사법부가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전망을 들어봤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의 물결이 시작되며 사법부에도 파장이 일었다. ‘성범죄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 대법원이 새로운 판단을 내놓았고, 이후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판단하는 사례들이 이어졌다. 이에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법원 판단이 형사법 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천대엽 대법관(현 법원행정처장)은 1월 4일 ‘자폐 남성의 성추행 사건’에 주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판결이 그간의 법리를 뒤집는 새로운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피해자 진술 다 인정하라는 것 아니야”

이날 대법원이 선고한 사건의 피고인은 자폐성 장애가 있는 남성이다. 공소사실 요지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피해자의 옆자리에 앉아 피해자의 왼팔 맨살에 자신의 오른팔 맨살을 비비며 피해자를 추행했다. 피고인 측은 “장애로 인한 상동행동일 뿐 고의로 팔을 비빈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1, 2심 법원은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 내용을 고려해보면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이 남성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앞서의 판단이 ‘위법하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므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할 수 없다”면서도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해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밝혔다.

이 판결에는 어떤 의미가?

2018년 미투 바람과 함께 ‘성인지감수성 판결’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피해를 본다는 공감대가 형성에 큰 기여를 했지만, 부작용도 생겨났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피고인이 피해자가 거짓말할 동기 등 특별한 사정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 주류적인 판례가 된 것이다.

김관구 법무법인 LKB & Patners 대표 변호사는 “‘무죄추정 원칙 및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내려진 ‘천대엽 판결’은 형사법의 대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법리를 다시 강조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천대엽 판결’ 이후 이어진 ‘무죄’ 판결

천대엽 판결 이후 성범죄 관련 법원 판결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판결문에 ‘피해자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해선 안된다’라는 취지의 분석이 담긴 것이다.

2021년 영상 채팅앱을 통해 미성년자 피해자를 만난 피고인은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신 뒤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6월 1심인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유죄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2심인 수원고법은 올해 1월 31일 “신빙성이 없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며 무죄로 뒤집었다.

다른 사건에서 한 피고인은 2021년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와 노상에서 대화하던 중 갑자기 손으로 피해자의 어깨와 등, 허리 부위 등을 만진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가 거부했음에도 계속해서 가슴과 허리 부위를 만진 혐의로 기소됐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올해 1월 24일 이 사건을 무죄로 판단했다. 판결을 내린 이지훈 판사는 이 사건 판결문에 천대엽 판결을 인용했다.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타당성뿐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춰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앞으로 성범죄 판결, 피고인에 유리할까?

김 변호사는 “대법원판결에 따라 향후 형사재판 실무 관행이 바뀔지, 바뀐다면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까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천대엽 판결)을 단순히 무죄추정 등 형사법의 대원칙의 일반론을 확인한 판결로만 본다면 별다른 판례변경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성인지감수성 판결’ 이후 수년간 형사재판 실무와 학계에서 지적되고 쌓여왔던 문제의식의 발로에서 나온 판결로 본다면, 기존의 주류적인 판결과 다른 내용의 판결들이 나오고 이에 따라 판례의 경향성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움]

김관구 법무법인 LKB & Patners 대표 변호사는 울산지방법원에서 형사합의·항소부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단독판사를 지내왔습니다. 15년간 판사로 재직하며 공직선거법과 뇌물, 횡령, 배임, 사기 등 경제범죄, 조세범처벌법위반, 산업보건법위반, 지적재산권침해, 성폭력, 마약, 음주·교통범죄 등 각종 형사사건과 영장사건을 처리했습니다. 2021년부터 법무법인 LKB & Patners의 대표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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