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우문현답] 골목의 낭만 앗아간 키즈카페

입력 2024-04-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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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친구 어울리던 어릴적 놀이터
이젠 상업시설 많아도 추억 못쌓아
소통가치 살린 공간으로 거듭나길

다섯 살 손녀 덕분에 드디어 말로만 듣던 키즈 카페를 직접 가보았다. 2000년대 초반 하나 둘 작은 규모로 시작된 키즈 카페는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규모화하는 동시에 프랜차이즈화의 길을 걸은 듯하다. 청주시 외곽에 위치한 키즈 카페는 빌딩 3개 층을 쓰고 있었는데, 1개 층 면적이 500평이라니 1500평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지만 실내 동물원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벌린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았다.

예전 입장료가 무료였던 골목에서 시간가는 줄 모른 채 뛰놀았던 세대로선, 입장료를 낸 뒤 손목에 종이 팔찌를 차고 돌아다녀야 하는 키즈 카페의 문턱이 영 낯설게 느껴졌다. 어른 한 명 입장료가 시간당 7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달 이용권이나 1년 이용권을 구입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3개 층을 오르내리며 보니 ‘아이 따로 어른 따로’식 공간 구획이 흥미로웠다. 일단 키즈용 놀이기구가 잔뜩 배치된 곳이 키즈 카페의 중심일 텐데, 이곳에선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각자 홀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 찍기 바빴고, 조금 머리 큰 녀석들은 가끔씩 또래끼리 어울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십중팔구는 혼자 놀았다.

한데 예상 외로 볼만 했던 풍경은 엄마(때론 아빠)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아이 데리고 함께 온 엄마들끼리 유쾌한 수다를 즐길 수 있는 온돌 침상도 있었고, 전신 마사지용 의자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낮잠을 청할 수 있는 침대는 자리 맡기 경쟁이 제법 치열했다. 키즈들이 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는 동안 부모를 위해 휴식 공간을 마련해주는 영리한 상술을 그 누가 따라갈 수 있겠는지. 뛰노는 중간중간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니 라면 떡볶이 돈까스 등 가벼운 스낵과 과자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은 이용객들로 북적였다.

키즈 카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곳일까 잠시 생각하노라니,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골목의 낭만과 장점을 키즈 카페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 골목은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렸건만, 지금은 엄마 아빠랑만 놀던가 기껏해야 엄마가 짝지워준 또래 친구들이 전부다.

그 옛날 현란한 놀이기구 하나 없어도 모래장난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고무줄 하나만 있어도 남부럽지 않게 놀았건만, 놀이기구는 기대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금세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공기놀이 땅따먹기 오재미 던지기 같은 단순한 놀이들이 그토록 흥미진진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건, 함께 놀았던 친구들과 차곡차곡 쌓았던 시간의 기억 덕분 아니던가.

키즈 카페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우연히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었을 뿐, 또 만날 기약도 없고 함께 쌓을 추억은 더더욱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관계의 본래 모습이건만, 즉각성 일회성 만남만 남은 키즈 카페의 화려한 외양 뒤로 낯가림을 극복하지 못한 미숙한 키즈들 얼굴이 오버랩된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 아빠와 가까운 친구로 지낸 요즘 세대는 또래 말고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는 순간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시절부터 계속 또래들하고만 어울려온 데다, 집안 사촌 간에도 데면데면해진 상황이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소통의 중요성과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 소통 불능 세대를 양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레 걱정이 앞선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본 경험도 별로 없고 소통의 필요성도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는 세대가 늘고 있음은 진정 안타깝다. 신세대 사원들만 해도 세대 쇼크에 빠진 나머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묘안이 직장 상사를 가족관계로 치환하여, 바로 직속 상사는 부모뻘로 생각하고, 그 위 상사는 조부모뻘로 여긴다는 것이다. 별로 부딪칠 일 없는 임원은 증조 할아버지(할머니는 거의 안 계시니)로 상상한다니, 생각할수록 ‘웃픈’ 이야기다.

이제 형제자매 없는 외동이들이 대세를 이루는 마당에, 기왕 판이 벌어진 키즈 카페가 화려한 상품화 및 세련된 상업화에만 몰두하기보다, 옛날 골목식 추억과 낭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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