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가 복수를 낳았다…이스라엘과 이란은 왜 앙숙이 됐나 [이슈크래커]

▲14일(현지시간) 이란의 드론 및 미사일 공격에 대응해 작동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방공 시스템.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의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란이 지난 주말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직접 공격했고, 이스라엘은 ‘고통스러운 보복’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은 15일(현지시간) 전시 내각에서 다수의 보복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면서 이 선택지는 모두 역내 전쟁을 촉발하지 않으면서도 이란에는 고통스러운 방식이라고 전했습니다. 재반격 여부와 관련,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전면전을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이란에는 ‘고통스러운 보복’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겁니다.

또 전시 내각은 이 가운데서도 미국 등 동맹이 반대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려 한다고 방송은 덧붙였는데요. 그러면서도 이란이 실행한 수위의 공격을 이스라엘이 묵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분명하고 강력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방송은 부연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에는 국제 사회의 압박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전언입니다. 일간 하레츠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전시 내각 각료들이 군사적 보복을 선호하지만, 국제 사회의 압박이 대응 방식 결정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는데요. 여기에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과 헤르지 할레비 참모총장은 대응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이란 공격 방어에 힘을 보탠 미국 등 우방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폈습니다.

국제 사회의 압박으로 전면전은 촉발하지 않는 모양새지만, 이스라엘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고 있죠.

▲15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팔레스타인 광장 건물벽에 걸린 반이스라엘 현수막 앞에서 시위대가 대형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이란의 공격에 “분명하고 강력한” 재보복을 하기로 했다고 이스라엘 매체가 전했으며 이란은 이스라엘이 재보복할 경우 다시 공격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한 세기 전만 해도 우호 관계였는데…이슬람 혁명으로 ‘파국’

이란과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적대 관계를 유지해온 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 중동의 ‘문제아’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는 이유로 아랍권에서는 이스라엘을 배척했죠. 이집트, 시리아와는 전쟁도 치렀고, 산유국들로부터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손을 내밀어준 나라가 이란이었습니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빠르게 이스라엘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중동 주요국 중 튀르키예와 함께 이스라엘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제약 없이 무역을 했고, 왕래도 가능했죠. 팔레비 2대 국왕 모하마드 레자 샤가 집권했을 당시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란에서 원유를 대거 수입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했죠.

양국 모두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기도 했습니다. 미국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이란은 자연스럽게 막역한 외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1979년입니다. 당시 서구식 근대화 모델이 불러온 빈부 격차와 팔레비 왕조에 불만을 품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혁명을 통해 이란을 장악했습니다. 이를 이슬람 혁명이라고 부르죠.

이란 국왕이었던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혁명 세력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신정 공화정 국가가 됐는데요.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혁명 정부는 오만한 강대국들에 맞서겠다면서 미국에 등을 돌렸고, 이스라엘과 단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 미국이라는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이라고 불렀죠.

그래도 양국 관계는 1980년대까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습니다. 1980년 이란과 이라크가 국경 지역인 샤트 알아랍 수로에 관한 영유권 문제로 8년간의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은 무기 등을 공급하며 이란을 배후에서 돕기도 했는데요. 이란을 통해 이라크를 견제하고 이란에서의 이스라엘 영향력을 재확립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건 이란이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단체를 조직 및 지원해 역내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이슬람 혁명과 이슬람주의를 중동 전역에 확산하겠다는 방침을 국가 핵심 전략으로 정했습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 정파와 정치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저항의 축’ 또는 ‘시아벨트 전략’도 이런 의도에서 비롯됐죠.

이후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선 서로를 비공식적으로 공격하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란 역내외에서 요인 암살, 시설 파괴 등 사보타주, 친이란 세력에 대한 공습과 폭격 등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고요.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시리아·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 등을 지원하고 동원하면서 이스라엘 공격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왔습니다. 양국 모두 자신이 했다고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소행임을 부인하지도 않았죠.

▲14일(현지시간) 새벽 예루살렘 상공에서 이란이 이스라엘로 발사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이스라엘 아이언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요격으로 공중에서 폭발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이란 직접 공격, 왜?…유가 상승 반사 이익도 노렸나

이번 이란의 직접 공격이 큰 우려를 촉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간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간접적 충돌만 있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중동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로 평가받지만, 대규모 충돌, 또 전면전은 없었던 것이죠.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으로 양국 관계를 둘러싼 긴장감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란의 ‘대리 세력’으로 불리는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은 이스라엘군 진지를 겨냥한 드론 공격을 가하거나 세계 물류의 요지로 통하는 홍해를 지나는 상선에 대한 공격을 이어왔는데요.

이달 1일 이스라엘은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 지휘관을 제거했습니다.

이로부터 12일 만인 13일 밤, 이란은 이스라엘에 약 300기의 자폭 드론과 탄도·순항 미사일을 발사했죠. 무력 보복 차원의 공격이었는데요.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단행한 건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기점으로 양국이 적대관계로 돌아선 이래 처음입니다. 이스라엘 측에 따르면 아이언돔을 비롯한 다층 방공망으로 자국을 공격한 드론과 미사일의 99%를 격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 ABC 방송은 이란이 당시 쏜 탄도미사일 가운데 9발이 이스라엘과 미국 등의 방어망을 뚫었으며 이 중 5발이 네바팀 기지에 떨어지면서 C-130 수송기와 사용하지 않는 활주로, 빈 창고 등이 파손됐다고 보도했죠.

이란이 직접 공격을 감행한 건 그간 간접적으로 벌어진 수차례 공격에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안팎에 알린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경제적 목적으로 이번 공격을 단행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세계 원유 매장량 4위 산유국으로 전체 수출 비율 중 원유가 60%에 이르는 이란이 유가 상승 반사 이익을 얻고자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반 정부 시위대의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사진은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6월 25일 총리실에서 열린 주례 내각회의에 참석한 모습. (AP/뉴시스)

이스라엘, 딜레마로 고민 깊어질 듯…관건은 재보복 여부·방식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이 마무리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14일 SNS를 통해 이번 공격을 ‘합법적인 방어권 수행’으로 규정하고 “현시점에서 이란은 ‘방어 작전’을 계속할 의사가 없다”고 전했는데요. CNN도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 이란 측이 스위스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작전이 마무리됐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은 추가 공격, 나아가 전면전엔 선을 그은 겁니다.

다만 압둘라히안 장관은 “만약 필요하다면 모든 새로운 공격에 맞서 합법적인 이익을 수호하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 이스라엘이 보복에 나설 경우 즉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제 공은 이스라엘로 넘어갔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향후 이스라엘의 선택지로는 △이란에 대한 직접 공격 △인명 피해 없이 이란 시설 공격 △사이버 공격 △외교적 대응 등이 거론됩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 내부의 군사 목표물이나 기반시설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거의 확실히 전면전을 유발하겠지만, 이스라엘의 일부 강경파 안보기관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이란 핵 시설을 추적할 기회로 볼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사이버 공격, 시리아 같은 제3국에 있는 이란 자산 타격, 드론 제조 현장 공격 등 배후를 주장하지 않고 스파이 기술과 비밀 행동에 의존하는 ‘그림자 전쟁’ 방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죠.

그러나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재보복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이 지연되면서 국제 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서는 ‘총리 퇴진’을 외치는 대규모 시위도 벌어지고 있죠. 정치적 위기에도 봉착한 건데, 네타냐후 총리로선 전시 내각을 유지해야 중도 보수층의 지지와 면책 특권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에 강력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안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해야 합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란과 그 동맹들은 현재 수십만 기 미사일과 다양한 종류의 로켓을 보유했다”며 이들의 미사일 발사를 그냥 내버려둔다는 건 이스라엘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매체는 “이스라엘은 자국의 억제력이 타격을 입은 데 대해 우려하면서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죠.

이번 사태가 중동 확전으로 가는 가장 큰 관건은 이스라엘의 맞대응 여부와 방식, 규모인데요.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확전을 불러올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만큼은 만류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너무 강력하면 동맹, 주변국과 관계가 파탄 날 수 있고 너무 약할 경우 이란의 담력을 키워 안보 위협을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죠. 이스라엘은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딜레마’에 빠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