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고조되는 반도체 패권경쟁에서는 이러한 한·일 국민성이 정반대로 나타난다. 미국이 탈중국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자 일본이 이를 기회로 삼아 그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고 파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누려왔던 반도체 최강국 지위 부활을 목표로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한 뒤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일본의 반도체 보조금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71%로 미국(0.21%)을 크게 웃돈다.
실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가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게 하도록 우리나라 돈 수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50년 이상 묶어둔 그린벨트 해제, 수천 명의 건설 노동자 지원 등을 통해 TSMC의 첫 일본 공장을 20개월 만에 완공시켰다. 통상 소요되는 공기를 절반가량 줄인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 지원금의 상당 부분이 재원에 대한 예산 계획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나온 것도 의외다. 절차를 중시해 오히려 기회를 자주 놓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정부의 그간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반도체 부흥을 위해서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하겠다는 자세가 엿보인다.
반면 한국은 파격적인 보조금은커녕 반도체 투자금 일부 세액을 공제하는 제도도 연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지원금 논의는 이제야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반도체 경쟁이 국가 총력전임에 따라 전시 상황에 맞먹는 수준의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투자 인센티브부터 전면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대기업 특혜’, ‘산업 간 형평성 논란’ 등의 명분으로 반도체 부문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제한하기에는 글로벌 판세가 급변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반도체 강국’을 이뤄낸 한국의 기민한 기질을 지금이라도 발휘해야 한다. m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