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로 회사 차 몰다 사망했어도…법원 "업무상 재해"

입력 2024-04-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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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회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안전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 숨졌다면, 비록 무면허 상태였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고 발생 경위 등을 봤을 때 반사회성이 크지 않다면 산재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숨진 A 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달 7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 씨는 2021년 새벽 시간대 경기 화성시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흙을 운반하기 위해 미개통된 도로를 운전하던 중 핸들을 잘못 조작하는 바람에 배수지로 추락해 숨졌다.

그는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있었으나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상태였다.

A 씨의 유족은 2022년 4월 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A 씨가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운전해 도로교통법 등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로 사고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게 타당하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하지 않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자의 범죄 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유족이 불복해 낸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고는 A 씨의 본래 업무인 공사 현장의 잔토 반출을 위해 하차지를 점검하러 가는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고용주로부터 제공받은 차량을 운전해 하자치로 이동하는 것도 통상의 업무 수행 방법이었다"며 "이 사고는 통상적인 운행 경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그 사고 장소가 하차지 점검과 전혀 무관한 장소에서 발생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고 봤다.

또 "운전면허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A 씨가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사실상의 능력은 있었다"며 "무면허 운전 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사고 현장은 미개통된 도로로,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노면이 젖어있어 매우 미끄러웠다"며 "이 사고가 온전히 A 씨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점을 토대로 "이 사건 사고는 근로자가 안전에 관한 주의의무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했을 경우 도로 여건이나 교통상황 등 주변 여건과 결합해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업무 자체에 내재한 전형적인 위험이 현실화한 것"이라며 "어느 모로 보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공단이 불복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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