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요동치는 엔화 환율…34년 만에 160엔 돌파 후 급락

1990년 4월 이후 최고치 찍어
이후 155엔 선까지 급격히 후퇴
“당국 시장 개입” vs “거래 줄어 변동성 커져”
엔화 가치, 유로화 대비 사상 최저
엔저에 일본인 해외여행 37% 급감

▲일본 도쿄의 한 외환 시세판 모니터에 29일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한 상황이 표시돼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이 ‘쇼와의 날’을 맞아 휴장한 가운데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도세가 지속되면서 엔·달러 환율이 장 초반 34년 만에 처음으로 160엔 선을 넘었다. 도쿄/AP연합뉴스

엔·달러 환율이 34년 만에 처음으로 160엔을 돌파했다가 155엔대로 급락하는 등 하루 동안 급격히 요동쳤다. 엔화 가치가 날개 없이 추락하자 일본 정부가 제동을 걸고자 개입했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엔화 가치는 이날 한때 미국 달러화 대비 3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유로화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도쿄 외환시장이 이날 ‘쇼와의 날’을 맞아 휴장한 가운데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오전 한때 160.17엔까지 치솟았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한 것은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엔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서는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엔·유로 환율은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가장 높은 171엔대까지 올랐다.

다만 오후 들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엔·달러 환율은 약 한 시간 만에 4엔 이상 떨어지면서 155엔대 초반까지 내렸다. 급격한 엔화 매수세 속에서 엔화 가치가 빠르게 회복하자 그 배경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직접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교도통신은 시장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외환시장에 개입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일본의 공휴일로 거래 주체 자체가 적은 데다가 당국의 엔화 매수 환율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확산하면서 변동성이 커졌을 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오오모리 쇼테루 미즈호증권 수석 데스크 전략가는 이날 엔화 환율 변동에 대해 “실제 개입이라기보다는 일본 황금연휴로 거래가 줄어든 시장 환경에 따라 변동성이 커진 것이 배경일 것”이라며 “최근 며칠간 움직임이 너무 빨랐으며, 160엔이나 159.50엔 부근에서 투자자가 이익을 확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장 초반 나타난 기록적인 엔저는 일본은행의 지난주 기준금리 동결 조치에 따른 것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2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치고 나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엔화 약세에 대해 “기본적으로 물가상승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평가하면서 당국이 엔저에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커졌다.

엔화를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인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 역시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연준은 30일~5월 1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인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 또는 4분기 들어서야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기록적인 엔저는 일본인들의 휴가와 여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일본인 해외여행객 수가 122만 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36.8%나 급감한 것이다. 자국 통화 가치 약세, 높은 항공 요금, 지지부진한 임금 인상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이는 지난달 벚꽃 시즌과 맞물리면서 일본을 찾은 해외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