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회생법원 확대 시급한 이유

입력 2024-05-02 06:00 수정 2024-05-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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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 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 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꾼들의 놀이터가 바뀌었습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바이오회사를 수년째 운영 중인 한 대표이사는 이처럼 한탄했다.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요구하는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을 갖춘 생산공장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한 제약사에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져 골치가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시세조종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 주가조작 세력들이 자본시장에서 투기할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그렇다고 돈 맛에 푹 빠진,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꾼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이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회생·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한계기업들을 법정 관리하는 법원이다.

법원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들을 회생 절차와 파산 절차로 구분한다. 존속가치청산가치에 비해 크다면 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 즉 회생으로 가게 된다. 반대로 남은 자산이 거의 없어 회생절차를 감당할 비용조차 댈 수 없는 회사들은 파산을 결정한다.

신흥시장을 개척한 꾼들의 수법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법원에서 회생 절차를 성실하게 종료한 기업의 새로운 인수자는 주주총회를 열어 기존 경영진을 표 대결로 밀어내고 경영권을 차지한다. 보통 여러 명이 투자펀드나 컨소시엄 형태를 구성해 실소유자를 특정하기 애매한 구조를 만든다. 이후 회사가 소유한 공장부지·본사 건물·기자재·생산재고 등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현금화해 각자 지분율에 따라 나눠 먹는다. 소위 ‘먹튀’를 하는 셈이다.

최근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산가치가 인정되는 처분자산이 남아있는 알짜 기업이지만, 단기 유동성 경색에 빠진 회생절차 신청 기업을 중심으로 법정관리가 이뤄지는 경향이 강해졌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거센 비판에 과거처럼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구조조정 보다는 혈세 부담이 덜한 쪽으로 산업·기업 구조조정 방향을 튼 것인데, 꾼들은 이 틈을 교묘히 노린 것이다.

주가 조작하던 기업사냥꾼들이 호랑이 굴을 제 발로 들어가는 대범함을 보이는 것은 잘만 하면 노다지를 캘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포스트 코로나 정책으로 사회 안정망을 하나둘 걷어내면서 도산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꾼들의 먹잇감이 늘면서 꾼들 입장에선 쇼핑 환경이 좋아졌다. 안 그래도 꾼들을 걸러내기 힘든 상황에서 법원에 일까지 몰렸다. 회생 전문 법관들의 업무 과중이 심화하면 올바른 새 주인 찾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우리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부산·광주·대구 등 지역 거점 도시에서 기업 회생·파산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법원 내 회생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자는 논의가 나온다. 실제 법원은 광주와 대구에도 회생법원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본지가 ‘기업이 쓰러진다’ 기획 시리즈에서 인용한 서울회생법원의 ‘2023년도 법인회생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는 법원의 절박함마저 엿보인다.

전국 법원에서 회생합의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676.8일에 달한다. 2년 가까운 소요기간을 단축하라는 주문보다 충실한 심리로 기업사냥꾼을 걸러내는 게 공정질서 확립이란 공익 목표에 더 부합할 것이다. 꾼들의 장난질을 멈추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적기에 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회생법원 확대가 시급한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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