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증권사 랩어카운트…2년 새 40% 증발

입력 2024-05-07 15:35 수정 2024-05-0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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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손실 전가…위법행위에 신뢰 '뚝'
"채권형 랩 수익률 떨어지니 기관도 무관심"

▲여의도 증권가. (이투데이)
▲여의도 증권가. (이투데이)

증권사 랩어카운트 잔고가 2년 새 40%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재작년 단기자금 시장 경색 사태에 이어 증권사 간 자전거래 등 불법 혐의가 적발되면서 대규모 자금이 이탈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들의 일임형 랩어카운트 잔고(계약자산)는 90조8858억 원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19.3% 감소했다. 액수로 보면 21조 원 넘게 줄어들었다.

2022년 2월 말(152조4173억 원)과 비교하면 4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랩어카운트는 증권사에서 고객의 투자 성향에 따라 자산 구성부터 운용, 투자 자문까지 종합적으로 자산을 관리해 주는 방식의 상품이다. 증권사가 알아서 운용하는 일임형 랩과 투자자문사들의 자문을 받아 운용하는 자문형 랩 등으로 구성된다.

랩어카운트 잔고는 2022년 하반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당시 김진태 강원지사가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설립한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발표하면서 단기자금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것이 시초가 됐다. 시장에서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않자 고객의 환매 요구가 이어졌고 유동성 위기가 금융업 전반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랩어카운트의 신뢰성을 잃게 하는 이슈까지 터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교보증권·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 등 9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를 점검한 결과 불법 자전 거래로 고객 간 손실을 전가하거나 특정 고객에게 사후 이익을 제공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랩어카운트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 자금을 단독 운용해야하기 때문에 특정 투자자 이익을 해하면서 제3자 이익 도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채권형 랩어카운트의 문제가 컸다. 증권사는 단기물만 편입해야 하는 채권형 랩에 만기 1~3년의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은 고금리 장기채권, 기업어음(CP) 등을 담으며 수익률을 높여왔다.

증권업계는 채권을 만기 불일치(미스매칭) 방식으로 담아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은 관행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시기 급격한 금리 인상이 이뤄지며 손실이 불어나자 자전거래까지 나선 것이다.

금감원은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계좌주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지만 증권사들은 미온적인 모습이다. 금감원 징계나 제재 결과 처분까지 기다리겠다는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의 손해배상 절차가 지연되며 신규투자자 유입을 막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랩어카운트 업계가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랩어카운트의 '큰 손'인 기관투자자가 신뢰를 잃은 랩 시장에 돌아오긴 힘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 검사 이후 미스매칭을 이용한 채권형 랩 상품이 사라지다보니 수익률도 일반 채권과 다를 바 없어 기관도 이 시장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최근 목표전환형 랩 등에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가입 규모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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