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처분적 법률’ 집어든 민주당, 국민 눈치도 안 보나

입력 2024-05-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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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공식 일정을 시작한 어제 대통령실 홍철호 정무수석에게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해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9일 선출되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국가 예산 13조 원이 드는 지원금 지급 근거법안을 22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한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 수용도 촉구했다. 박 원내대표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던 홍 수석은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경청했다고 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민생을 지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면서 지원금 우선 처리를 주장했다. 추경 논의 제안은 기세 싸움 차원의 언급이 아닌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는 만큼 국회 안팎에선 민주당이 ‘처분적 법률’을 활용해 지급을 강제하는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소상공인 대출 이자 1조 원을 깎아주는 긴급조치도 필요하다는 이재명 대표는 앞서 지난달 17일 “처분적 법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생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대응부터 쉽지 않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민생을 지키려면 통상적 차원의 대책을 넘어 더 정교하고 과감한 재정·통화 정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 곳간을 대놓고 축내는 현금 살포가 우선시될 수는 없다. 부작용과 역기능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교사가 수두룩하다. 현금 살포가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남미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은 포퓰리즘으로 거덜 난 나라가 되는 대신 번영의 드라마를 쓴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 부실, 부채 부담으로 생고생을 하는 일도 발생했을 리 없다. 국가 재정을 파괴하는 난폭한 방책은 중장기적으로 재앙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이다. 민주당은 포퓰리즘의 단맛에 취하기에 앞서 그 폐해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에게 생소한 처분적 법률에 기댄다는 입법 전략도 전면적 재고가 필요하다. 처분적 법률은 행정부 집행이나 사법부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국민에게 권리나 의무를 생기게 한다. 그런 만큼 3권 분립의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많다. 위헌 논란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간 최순실 부정재산 환수법, 전두환 은닉재산 추징법 등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22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민주당은 용도를 가리지 않고 처분적 법률을 활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무모하다. ‘입법 독재’ 비판을 자초하는 것 아닌가.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는 문제도 크다. 민주당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13조 원의 예산이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정면으로 반한다. 우리 법제는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두고, 국회에는 예산 심의·확정권만 부여하고 있다. 그 어떤 대단한 논리를 들이댄다 해도 정부의 추경안 편성 없이 입법권만으로 예산을 손대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합법적이지도 않다. 하물며 처분적 법률이란 논리가 통하겠나. 국민 눈치도 안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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