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칼럼] 호남 근본주의 고착화 경계해야 한다

입력 2024-05-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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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ㆍ전 부산교대 교수

정치와 결합해 맹종·적개심 키우고
5·18도 신성시…배타적 사고 조장
자유민주 좀먹는 신기루 깨달아야

닷새 후면 5·18 민주화운동기념일이다. 이날은 1980년 광주 민주 항쟁자와 그들의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국민적 합의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절대 불변의 진리로 떠받들어지면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신조로 변질되면 그것은 근본주의에 빠지게 되므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근본주의는 종교의 절대 진리를 완고하게 신봉하는 데서 비롯된다. 종교의 내재적 진리에 근거한 근본주의는 정치 영역에 교조적으로 적용하면, 이슬람처럼 종교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확산하며 폭력을 합리화하는 빌미가 된다. 근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교조의 절대성에 대한 맹종이다. 둘째, 그로 인한 타 교조에 대한 강한 적대감과 배타성이다. 셋째, 자신의 교조에 대한 비판적이고 개방적인 성찰 능력의 결여이다. 넷째, 교조적 권위에 대한 순응이다. 애석하게도 호남에서도 이러한 조짐이 드러나고 있어 호남 근본주의가 우려된다.

6·25 당시 적군 행진곡을 만들어 여적(與敵) 행위를 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공원을 조성한다는 광주광역시의 주장은 ‘호남’이면 어떤 가치에도 선행한다는 교조적 인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임진왜란 때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한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나 동학농민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은 호남의 지역주의가 존중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호남의 절대적 가치로 치환하고 거기에 정율성을 대입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호남의 절대성은 주민 보호 전략으로 변신하여 원하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설 수 없게 하였다.

호남의 교조가 적대적 배타성으로 변질된 근거는 지난 4월 총선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호남에서 민주당은 28석 전부를 석권하였지만, 선거비용 전부를 보전받는 15% 이상 득표한 여당 지역은 3개뿐이었다. 반면 부산·울산 24개 선거구 중 야당 당선 3석 이외에 민주당 후보 모두 40% 이상의 득표율을, 경남 역시 16석 중 민주당 당선 3석 이외에 후보 모두 30∼40% 득표율을 보였다. 대구·경북(25석)마저 민주당은 평균 20% 이상 가져갔다. 이 현상을 호남 거주인구가 적어서 그들의 몰표 주기 전략으로 볼 수만은 없다. 과거 30%에서 현재 10%로 줄어든 만큼의 호남 인구 중 상당수가 민주당이 압승한 수도권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호남 근본주의는 심층으로 들어가면 호남은 피해자요 희생자라는 인식으로 탈바꿈한다. 정치적 탄압의 피해와 희생이 절대기준으로 작동하면 비판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가로막는다. 5·18 민주화운동법은 허위사실 유포에 대하여 중형을 규정함으로써 5·18 자체를 역사적 사건으로 보고 이에 관한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논의 자체를 봉쇄하였다. 또 5·18 보상법과 5·18 유공자법에 따른 민주화운동 관련 수혜자 공개를 놓고 여러 논란이 이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호남 근본주의가 고착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호남인들이 입는다. 사실 민주당은 DJ 이전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호남 지역주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민주당과 후보들은 민주당의 훌륭한 전통이나 DJ의 ‘인동초’ 화해 정신에 반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음에도 호남(출신)의 유권자들이 전통 민주당과 DJ가 정립한 권위에 교조적으로 순응한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5·18 민주화운동은 호남 근본주의를 성립시키는 근거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유신정권의 종식을 지핀 1979년 부마(釜馬)항쟁이 ‘영남 근본주의’를 성립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마항쟁을 절대 신성시하지 않으며 그 의미를 개방적인 입장에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남 근본주의는 5·18 민주화운동을 절대 신성시하여 배타적 사고를 조장하고 자유롭게 숨 쉴 우리의 공간을 앗아가는 악폐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 모두 호남 근본주의가 민주사회에 역행하는 온갖 폐해와 오류를 낳는 실체 없는 망국적 신기루임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호남 근본주의 망령을 일거에 근절하지 못하면 통일, 탈핵, 평화를 내세운 또 다른 유사 근본주의까지 창궐하여 나라를 더욱 피폐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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