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사회 전반 ‘폭력성 관리’ 필요해

입력 2024-05-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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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전문위원·언론학 박사

사적갈등으로 인한 흉악범죄 급증
성과·배금주의가 인간을 도구화해
사회적·정신적 ‘웰빙 관리’ 나서야

얼마 전, 모두를 경악하게 한 흉악범죄 사건들이 또 일어났다. 하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미국 변호사로서 대형 로펌에서 일했던 A가 이혼한 전처를 둔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수능 만점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던 명문대 의대생 B가 전 여자 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소위 기득권이며, 치열한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승리자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 이러한 일을 벌였다는 것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가해자들이 얼마나 흉악하며 잔인했는지, 그리고 피해자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느 흉악 범죄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일련의 사건들 또한 흥밋거리로 한동안 소진되었다가 잊히게 될까봐 염려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인구 대비 살인을 포함한 흉악 범죄의 비율이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한다. 이렇다보니 흉악 범죄는 예외적으로 악독한 개인이, 예외적으로 불운한 개인에게 가하는, 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이번에도 사건이 일어나게 된 맥락과 이를 방지하고 해결할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사건의 ‘예외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낮은 흉악 범죄 비율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한국에는 갱단이 활개를 치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흉악 범죄가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살인율이 낮은 것뿐이다. 개인 간의 사적 관계 내에서의 갈등으로 인해 흉악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의 비율을 놓고 보면 마냥 안심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전 연인, 전 배우자 등에게 가한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건수는 지난 4년간 52% 이상 급증하고 있다. 한 해에 47명이 이와 같은 범죄 피해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조직범죄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위험 연구 분야에서 범죄는 조금 특별한 영역에 있다. 안전 관리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자연재해나 인공적 재해와 달리,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 즉 내면까지 관리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근래에 있었던 두 가지 살인 사건, 그리고 얼마 전에 거제도에서 일어난 이별 살인 사건 등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연인 간 혹은 부부 간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물리적, 정서적 폭력이 점점 자라나 한 사람을 살해하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다. 폭력성은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되어 환경, 혹은 체계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다. 타고나게 인간에게 있는 폭력성이 그것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개인에 의해 증폭되는 것이다. 그 조건은 가정환경이 될 수도 있으며, 교육 환경, 개인 간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체계가 얽혀서 형성된다.

델(Dell)이나 쿠퍼(Cooper)와 같이 흉악 범죄에 대해 깊이 연구한 사회심리학자들은 폭력성을 키우는 사회의 기조, 혹은 문화에 주목한다. 권위주의, 배금주의 등 인간의 존엄을 헤치는 가치 추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지배가 권력이자 지위가 되는 문화가 흉악 범죄 증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인간을 도구화하며,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

요즘 인터넷에는 ‘전 국민이 분노조절 장애’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효율과 성과만을 중시하다보니 인간이 도구화되며, 폭력적인 언행과 권위행사가 자연스레 나타나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학교폭력, 데이트 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 갖가지 폭력은 이와 모두 연관되어 있다. 대한민국 사회 내면의 ‘폭력성’을 하나의 사회 문제로 보고 정신적 웰빙(well-being)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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