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교육을 풀어줘야 교육이 산다

입력 2024-05-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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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해방후 경제 기적 끌어낸 ‘교육팽창’
이념과잉·평준화에 혁신 방향 잃어
다양성 살리고 관치 폐해 깨달아야

한국에 최초로 새워진 현대식 교육기관은 원산학사라고 알려져 있다. 1883년이었다. 외국인 선교사가 처음 문을 연 학교는 1885년 설립된 배재학당이었다. 그러나 1894년 갑오경장 이전 교육기관의 설립은 미미하였다. 갑오경장 이후 해외유학을 마친 지식인이나 외국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들을 설립하면서 사설교육기관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조선 정부도 소학교와 중학교 등 공공교육기관을 설립하였으나 사설교육기관에 비하면 그 숫자는 미미하였다.

한국에서 포괄적인 현대식 공교육은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면서 도입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 교육은 일본의 통치목적에 봉사하도록 하는 용도였기 때문에 형식적인 도입에 가까웠다. 일본이 조선의 교육을 통제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 1911, 1922, 1938, 1943년 각각 공포된 네 번의 조선교육령이었다. 1911년의 교육령은 조선의 사설교육기관을 통제할 목적과 함께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과 조선인의 교육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학교의 설립도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취학률은 3% 미만에 머물렀고 중고등학교의 취학률은 0%에 가까웠으며 대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1895년 고종이 설립한 교사양성기관인 한성사범학교는 폐교되었다.

1922년의 조선교육령은 3.1운동에 놀란 일본이 시행한 소위 문화정책이라는 것의 일환이었다. 제2차 교육령에 따라 조선인과 조선 거주 일본인 교육에 대한 법률을 하나로 통일했다. 그 이전에 미미하던 학교도 증설되어 초등학교 취학률이 세 배 가까이 증가하였으나 10%에는 아직 못 미쳤다. 교육의 내용은 일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수업연한과 교과과정에서 차별은 여전하였다. 대학교육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고 그와 함께 사범학교에 관한 규정도 새로 도입되었다. 조선에 대학과 사범학교 설립을 위한 법적 기초가 비로소 마련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요 도시에 사범학교가 설립되고 1924년 한국 최초의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

1938년과 1943년의 조선교육령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1938년의 교육령은 황국신민화, 내선일체의 강력한 동화정책의 일단이었다. 조선인 교육기관과 일본인 교육기관의 명칭을 통일하고 군사교육과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내용들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았다.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전쟁에 필요한 물자공급과 인력지원의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평등개념을 부각시키려고 하였으며 이것이 교육령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는 조선 청년들을 일본군에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1940년대 초반이 되면 초등학교 취학률이 40%에 다다른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의 취학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였으며 전문대학과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취학률은 무시하여도 좋을 만큼 낮았다. 한국에서 교육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미군정 3년 동안 초등학교 취학률은 1945년 40% 정도에서 70%까지 증가한다. 식민지 시대 선택된 조선인에게만 허락되던 중(고)등학교는 처음 2년 동안 62개에서 250개로 증가하고 취학률은 여섯 배 증가한다. 1945년 5월 3,039명이던 19개 전문대학 이상의 고등교육기관 학생 수는 1947년 11월 29개 학교 20,545명으로 증가한다. 이 사이 한국 성인의 문해력은 20~25% 정도에서 70% 이상으로 증가한다.

이와 같은 교육의 팽창은 이승만 정부에서 더욱 가속화되며 1960년이 되면 취학률은 초등학교 100%, 중학교 40%, 고등학교 20%, 대학교 3% 정도에 이른다. 기실 교육이 한국의 경제적 기적의 기초였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룬 기적에 봉사한 요인은 교육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교육과 노동을 빼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간다. 그런데 경제개발에 정신이 없던 시대에 도입된 불합리한 여러 제도 때문에 이제는 미래를 담보하는 교육혁신은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교육현장에서 넘치는 이념의 과잉은 추구하는 진리가 어디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그 가운데 관치와 교권의 상실은 위험한 수준에 다다랐다. 모든 것은 평준화를 지향하고 교과의 내용 또한 천편일률적이다. 교육은 풀어줘야 산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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