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사랑이란 이름으로

입력 2024-05-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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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병은 도대체 언제쯤 낫는 겁니까?” 화난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만한 게, 벌써 2년이 넘도록 병의 차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애써 남자의 눈빛은 외면했지만, 내 속은 가뭄 때 논바닥처럼 바짝바짝 타들어만 갔다.

오랜 소화불량으로 그가 나를 찾은 건 어느 늦가을이었다. 검사란 검사는 다 해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병을 찾아내지 못한 나는, 결국 상세 불명이란 마뜩잖은 단어를 병명에 붙여가며 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처음엔 병세가 좋아지는 듯도 보였다. 하지만 안도의 시간도 잠시뿐, 며칠 안 되어 재발한 증상으로 환자의 찡그린 표정을 마주하는 건 그 후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갈 무렵, 일주일이 멀다 하고 진료실을 찾던 그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엔 홀가분한 느낌도 들었다. 낫지 않는 환자를 매일 본다는 건 의사에게도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내가 놓친 병 때문에 안 좋아진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론 ‘그래 명의를 만나 지금은 좋아졌겠지’ 하며 위안 삼기도 했다.

남자의 얼굴이 가물가물해져 가던 어느 날, 대기자 명단을 훑어보던 나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그 환자였다. 자취를 감춘 지 1년이 조금 지난 때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다행히 어디선가 명의를 만난 듯 보였다.

“전엔 제가 선생님을 많이 괴롭혔죠?”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그의 등 뒤엔 천진난만한 아이 둘이 서 있었다. 이번엔 여행차 왔다가 감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다고 했다.

“실은 제가 갑자기 집 근처로 발령이 나서 그간 병원을 들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집으로 돌아간 후론 몇 년 동안 저를 그렇게 괴롭혔던 병이 씻은 듯이 나아졌지 뭡니까.”

학교를 전학시킬 수 없었던 아이들을 대신해 3년을 매일 구불거리는 시골길을 1시간이 넘도록 운전해야 했던 아빠, 때론 시간에 쫓겨 식사를 거른 때도 부지기수였던 그, 낫지 않던 남자의 병은 아마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했던 가장의 무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세 사람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병원의 긴 복도를 가득 채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때론 아파하고, 때론 눈물짓고, 그리고 행복해하고. 벌써 시들어 버린 5월의 카네이션꽃들 속에서 그 누군가의 아픔과 눈물과 행복을 다시 한번 소환해 본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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