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中 직구앱 규제 깬 소비자의 힘

입력 2024-05-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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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보호 명분 규제시도한 정부
편익 무시…소비자 저항에 '화들짝'
규제권력 깨 시장살리는 계기되길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정부가 가장 놀랐을 것이다. 중국의 직구 앱 제품에 대한 규제에 소비자들이 그처럼 격렬하게 반발할지 몰랐다.

중국 직구 앱의 국내 시장 진입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척 많다. 우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초저가를 무기로 단기간에 1000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확보한 중국 이커머스의 실력에 경탄과 우려가 교차하였다. 이 정도 속도로 확장하면 몇 년 안에 전 국민을 사용자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막대한 자본력에 뛰어난 마케팅 역량을 갖춘 중국 이커머스가 수천만 명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직구를 넘어 국산 제품에까지 판매를 확대하면 그 피해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으로까지 확대할 것이라 우려되었다.

중국 이커머스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시기에 전격전을 펼치며 국내 시장에 진입한 것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연합군을 형성해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듯 동시에 국내 시장에 진격해 위력을 과시한 것이 공교롭기만 하다. 과거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데자뷔처럼 연상되며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에서는 중국 이머커스가 돈으로 물량공세를 펴는 것을 ‘전해전술’(錢海戰術)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중국 앱들이 국내 사용자 정보를 입수해 중국으로 유출한다는 소문은 공포심에 불을 질렀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핑계로 가한 한한령이 아직도 철회되지 않은 채 중국 이커머스가 자유롭게 국내 시장을 휘젓고 다닌 것에 대한 반감도 컸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유통업체들은 중국 정부가 과도하고 촘촘한 규제로 질식시켜 철수하도록 만들었는데 중국 이커머스는 국내 시장을 점령하듯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 약소국의 서글픈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직구 앱을 규제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었다. 중국 직구 앱 규제를 발표하고 철회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과 후의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논조가 180도 다르다. 얼마 전만 해도 거의 모든 언론이 중국 이커머스의 전방위 공세에 한국 시장을 다 빼앗긴다며 정부의 느슨한 대응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유통전문가들도 중국 이커머스를 방치하면 국내 산업이 초토화될 것이라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당시에 중국 직구 앱 규제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가는 뭇매를 맞을 분위기였다.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로 여론이 돌아섰다. 정부가 섣부른 규제를 시도했다가 소비자 반발로 한발 물러서자 ‘탁상공론’의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룬다. 이 틈을 타고 일부 정치인들은 정부의 정책실패를 비판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전에 중국 직구 앱을 규제해야 한다고 정부를 몰아붙이던 정치인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어설프게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의 칼을 꺼냈다가 철회한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특히 의대 정원 문제로 정책의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무능한 정부로 찍힐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사실상, 중국 직구 앱을 직접 규제할 방법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공산독재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정부는 중국 직구 앱을 규제할 수 있는 명분을 소비자 보호에서 찾았고 위해성이 우려되는 80개 품목에 대해 국내 안전 인증(KC인증)을 받지 않은 경우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대거 들고 일어나자 화들짝 놀라 규제를 취소하며 사과까지 하였다.

지금까지 규제정책에 있어서 소비자는 항상 뒷전이었다. 대형마트 규제, 적합업종 규제, 공유차량 규제 등의 수많은 규제에서 소비자 편익은 무시되었다. 소비자가 숫자가 많지만 단체화되지 않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언론도 규제로 인한 소수의 피해만 부각할 뿐 다수 소비자의 권익 침해는 소홀히 다루었다. 정치권도 소비자보다는 사회경제적 약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런 여건에서 정부는 갈등 문제를 해소하는 전가의 보도로 규제를 사용해 왔다. 말로는 규제혁파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규제를 남발하는 이율배반적 관행에 길들어 있었다. 그러나 중국 직구 앱 규제 철회를 계기로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 예상한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부당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참고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힘이 독재권력을 타도하여 정치민주화를 꽃피웠듯이 소비자의 힘이 규제권력을 타파해 시장자유화를 개화시킬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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