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너는 나의 클론

입력 2024-05-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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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아내가 분노를 토하며 막내를 꾸짖는 중이다. 그럴 때마다 회로가 켜지듯이 반복되는 구절이 진행 중이다. ‘ 난 한 문제라도 틀리면, 억울해서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몇 번이라도 풀어보고 자곤 했어.’

이런 훈시가 늘 반복되곤 한다. 집사람을 토닥이고, 기죽어 있는 아이를 위로하며, 항상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난 선풍기도 없는 한여름에 공부에 열중하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는 것도 모르기 일쑤였다. 근데 넌 이 좋은 환경에서도….” 막내가 승부욕과 근성이 없는것은 나를 닮아서라는 생각이 드니, 더 측은지심이 들면서도 왠지 어여뻐 보이기까지 한다.

어느날 진료실에 한 어머니가 울먹이며 내원하였다. “제가 이러다 큰일 낼 거 같아 왔어요.” 그녀에겐 초등학생 딸 둘이 있는데, 큰딸이 시어머니와 똑같이 닮았는데,보면 볼수록 정이 안 가고 밉더라는 거였다. 최근 낮에 낮잠을 자다가 깼는데, 큰딸이 엄마에게 안기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비몽사몽 중에 확 밀어버려 아이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녀는 죄책감과 자기 환멸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사랑은 마음에서 나오지 이성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오늘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인을 닮은 부분을 찾아보신 후 그것만 생각해 보세요.”

며칠 후, 그녀는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다시 찾아왔다. “이제 알았어요. 눈 때문에 속았어요. 눈만 빼곤 나를 쏙 빼닮았어요. 자는 모습이 너무 이뻐요. 밥먹을 때 오물거리는 입도요.”

어버이날 부르던 노래 중에 ‘부모의 사랑은 푸른하늘보다 높고,푸른바다보다 깊다’는 가사가 있다. 맞다. 부모의 사랑은 매우 강하다. 단, 자기 유전적 특성을 자식에게 느꼈을 경우에만 그러하다. 어쩌면 가장 협소하고 이기적인 사랑이리라.

물론 부모의 사랑을 폄하하거나 왜곡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또한 부모님의 정성과 희생으로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도 큰 오류를 낳을 수 있기도 하다. 큰아들의 경우엔, 나와 달리 경제관념과 절약 정신이 뛰어나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저러나 공감이 안 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진료실을 나서려는 그녀에게 공감의 한마디를 건넸다. “저의 집도 그래요.” 그녀가 더 환해진 미소로 화답하는 듯이 보였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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