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감원 18개 증권사에 ‘펀드 위험등급’ 200억 제재…증권사 “억울” 단체 의견

입력 2024-05-31 16:31 수정 2024-05-3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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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증권가.
▲서울 여의도 증권가.

18개 대형 및 중소형 증권사가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인 ‘기관경고’ 조치와 함께 200억 원이 넘는 과태료·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펀드를 판매할 때 온라인 전산시스템과 투자설명서 상 위험등급이 변동된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초 발표한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의 후속조치 일환이다. 증권사들은 이에 대해 ‘과도하다’는 업계 의견을 취합해 금융투자협회 측에 금감원 전달을 요구하는 단체 성명문을 제출했다. 다만 최종 징계 수위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최종의결에 따라 감경될 수 있다.

18개 증권사 200억 과태료ㆍ기관경고 조치 의결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8일 ‘증권사 펀드 판매 종합검사 제재 안건’ 관련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증권사 18곳에 대해 자본시장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총 200억 원이 넘는 과태료·과징금을 부과했다. 증권사별로 보면 한국투자증권이 43억 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신한투자증권 37억 원, KB증권 21억 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증권사 3곳에는 기관경고, 1곳에 기관주의 조치도 의결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상반기 ‘펀드 위험등급 분류 및 판매 업무 적정성 점검’ 수시 검사 결과를 실시한 바 있다. 기간은 2016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로, 검사 대상 증권사들은 앞서 3월 검사 결과 관련 사전조치 통보서를 받고 소명 의견을 전달한 상태다.

제재심의위원들은 일부 제재 증권사들에 대해 증선위 의결 전까지 이행계획서를 통해 제도 개선 사항을 제출하면 기관경고·주의 제재는 보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위법·부당행위는 양해각서에 의한 자율개선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제재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

감독당국이 금융사에 내린 제재조치에 대해 이행계획서 제출을 통해 제재 감면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경우는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분식 사례가 마지막인 만큼 극히 드물다. 감독당국 차원에서도 이번 제재를 두고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 조치를 내리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펀드 위험등급 산정 기준 미비…재산정

해당 검사는 위험등급 펀드 판매 과정에서 변동 사항이 운용주체인 자산운용사의 전산시스템과 판매사인 증권사의 투자설명서에 제대로 연동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펀드 위험등급제는 운용사가 기초자산의 변동성, 원금손실 가능액, 환매여부 등을 비롯해 펀드 수익률 변동성을 토대로 매 결산시점마다 위험등급을 1등급(매우 높은 위험)부터 6등급(매우 낮은 위험)으로 재분류한다.

예를 들어 1등급 펀드는 최근 3년간 연환산 수익률 변동성이 25%를 초과하는 반면, 4등급(보통 위험) 이하부터는 변동성이 10% 이하에 그친다. 전체 펀드에서 위험등급으로 평가받는 3등급 이상 펀드는 80%에 육박한다. 그러나 운용사와 증권사 간 펀드 위험등급 변동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사례가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투자성 상품의 위험등급 산정 기준 체계 재정비에 나섰다.

금융사별로 다른 펀드 위험등급 산정 기준을 통일하고, 금융판매기관이 소비자에게 자체 위험등급을 안내하도록 하는 판매자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판매사는 재산정 주기가 도래하지 않더라도 대외 시장 환경 급변이나 현재 사용 중인 위험등급이 시장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위험등급을 재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일부 회사는 투자설명서 상에서는 ‘고위험’으로 제대로 설명돼 있었는데, 전산상에만 ‘중위험’으로 잘못 나와 있었다. 온라인 펀드 전산 반영이 늦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펀드 투자는 온라인 채널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이러한 전산 오류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펀드투자 동향 분석에 따르면 신규 펀드 온라인 판매 비중은 2019년 20.9%에서 지난해 4월 54%로 2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 1분기에는 온라인 판매 비중이 처음으로 오프라인 판매 수치를 넘어서기도 했다.

금소법 6개월 유예기간ㆍ시스템상 오류…협회 단체 입장문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제재 수위 강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보고 있다. 검사 기간에는 금소법 시행 6개월 유예기간(2021년 3월~9월)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투자설명서나 운용 방식 등 불명확한 현장 작업을 재정비하던 계도 과정에 대해 제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이 시기 증권사들은 기존 투자설명서뿐 아니라 온라인, 대면 상품 판매 시스템 구축 등 금소법에 필요한 시스템을 준비 중이었다.

과징금이 펀드 건별(件別)로 책정돼 실제 판매 이익보다 수백 배 이상 과징금이 부과됐다는 점도 부담이다. 증권사들은 실제 펀드 판매이익보다 많게는 최대 1000배 넘는 과징금을 받아들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하거나 부당권유 행위를 했을 경우 판매 금액의 최대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를 부당권유 등 불완전판매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검사가 은행에서 시작돼 증권사로 확산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사례는 KB국민은행에서 펀드를 구입한 고객이 온라인 전산과 투자설명서 간 위험등급이 불일치하다는 걸 발견하고 관련 민원을 금융감독원에 제기하면서 은행검사국이 먼저 검사에 착수했다. 이후 금융투자검사국에서 증권사 검사로 확대했다. 은행에 대해서는 2022년부터 제재 부과를 시작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펀드 판매 과정에서 전산상 오류로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점은 인정하나, 부당권유 판매가 아니고 시스템적 착오였다"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실질적 소비자 피해도 없고, 부실화된 펀드도 없었다. 전산상에서는 '중위험'으로 나와있었지만, 실제 투자설명서에는 '저위험'으로 나타나 실제적으로는 오히려 더 안전한 펀드도 있었다"고 했다.

증권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금융투자협회는 22일 회원사 18곳의 의견을 모아 11매짜리 ‘펀드 위험등급 위반형 제재조치 관련 의견’ 입장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같은 의견서는 아직까지도 금융감독원 측에 전달되진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협회가 최근 상장지수펀드(ETF) 점검 등 금감원으로부터 받는 압박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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