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업비밀인데…‘원자로 설계도면’ 무단 유출 한전기술 직원 적발

입력 2024-06-06 05:00 수정 2024-06-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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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직원 요구에 ‘영업비밀 2급’ 자료 등 출력해 전달
부정경쟁방지법 등 위반…내부 통제 시스템도 작동 안해
“고의적인 유출 의도는 없어…추후 문제시 민형사상 책임”

▲경북 김천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기술 본사.   (한국전력기술 제공)
▲경북 김천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기술 본사. (한국전력기술 제공)

한국전력기술 직원들이 원자력발전소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퇴사 직원에게 전달하다가 적발됐다. 다만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손해가 당장 발생하지 않은 점을 참작해 법적 조치 없이 내부 징계로 마무리됐다.

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전기술은 최근 ‘원자로 설계자료 무단유출’ 관련 특정감사를 벌여 원자로설계개발본부(원설본부) 팀장급 직원 2명이 퇴직한 A 씨에게 각각 영업비밀 자료를 넘긴 것으로 파악했다.

한전기술 원설본부는 대전 유성구 연구단지에 있는데, A 씨는 원설본부에 재직하다 같은 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이직했다. 연구단지는 국가보호시설로써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돼야 하지만 업무 공간이 혼재돼 출입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A 씨는 해당 직원들에게 찾아가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관련 자료와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설계기준서 등 자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직원 3명은 보안상 이유로 A 씨의 요구를 거절했고, 팀장급 2명은 자료를 직접 출력해 제공했다.

이 자료들은 모두 한전기술의 규정에 따라 영업비밀로 지정돼 있다. 특히 원전 설계기준서는 영업비밀 2급에 지정된 자료로, 중요도와 가치를 인정해 ‘특별보호자료’로써 별도 지정해 관리한다.

영업비밀 2급 자료는 내부 직원인 실무자만 파일 열람이 가능하고, 외부인에게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부득이하게 제공해야 할 경우에는 △영업비밀유지 서약 △전결권자의 승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두 직원은 절차 없이 무단 유출했다.

한전기술 내부 시스템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규정상 영업비밀 2급 자료는 일반 실무자가 사용 권한을 가질 수 없으나, 별도 통제 없이 출력이 가능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용 권한이 잘못 부여되고 있던 것을 인지한 셈이다.

(이미지투데이)
(이미지투데이)

두 직원은 감사 과정에서 A 씨가 한전기술 재직 당시 업무에 경험이 있고, 현재 연구원에 다니면서도 업무 관련 도움을 받는 등 같은 이슈에 대한 공동대응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또 설계지침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이미 공개된 자료였고, 제공한 다음 날 바로 회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사실은 이들의 행위가 산업발전법과 부정경쟁방지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A 씨가 해당 자료를 복사‧저장했거나 사본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고, 추가적인 유출 피해에 대한 위험성 등 회사에 심각한 손해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했다고 봤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A 씨에게 직접 자료 삭제를 통보했고, 원래 절차대로 비밀유지 확약서를 받았다. 만약 자료가 유출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서약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직원들에 대해서는 고의적인 유출 의도가 없다고 보고 내부 징계(감봉‧경고)로 결론내렸다. 법률자문 결과 자료 유출은 법적으로 위배되지만, 당장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손해가 없어 법적 조치의 실익이 적다는 게 감사실 판단이다.

또 한전기술 내부의 권한 부여 절차와 시스템 미비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과거 보안사고 사례가 있었음에도 같은 사고가 발생한 만큼 경각심을 갖고 보안교육시행도 주문했다.

앞서 2022년 12월 퇴직을 앞둔 한전기술 직원이 영업비밀 자료를 외부망으로 빼돌린 뒤 기술자문을 하다 적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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