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과학과 기술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입력 2024-06-1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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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유구한 역사…눈부신 산업혁명 진행
물질의 질곡서 해방됐지만 행복은?
힘과 능력 걸맞은 배려·사랑 갖춰야

인간의 여정에서 과학과 기술을 빼면 정체의 역사였다.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다른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면, 정주와 농업의 시작은 인구의 증가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향한 긴 행로의 첫발이었다. 인간이 왜 농업을 시작하였는가에 대한 정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와 야생식자원의 감소, 경작가능 야생식물의 증가로부터 시작하여 기술진보와 인구증가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정착이 배우자를 보다 잘 통제할 수 있고 후세의 양육에 편리하였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존재한다.

농업에 따라 잉여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사회계급이 분화하고 정치권력이 등장한다. 그와 같은 첫 사례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은 기술과 과학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자를 사용하였고 농업을 위한 관개시설로부터 수학, 천문학 등을 발전시켰으며 아치형 구조물을 통해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건축기법도 수메르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농업을 시작한 이후 발전을 거듭하던 기술은 기원전 2500년 전부터 약 3000년 동안 정체하였다. 그동안에도 기술의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농업혁명과 그에 따른 진보와 비교하면 기원전 2500년 이후 서로마가 멸망(서기 476년)하기까지 3000년 동안의 기술발전은 괄목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노예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전쟁을 통해 노예의 노동력이 풍부하게 공급되었기 때문에 굳이 기계와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제국이 혼란과 쇠락에 빠지는 것은 제국의 팽창이 멈추면서 노예의 공급이 끊기면서부터이다.

유럽에서 기술은 오히려 암흑기로 알려진 중세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으로부터 등자가 도입되면서 말이 점차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중(重)형 쟁기를 발명하였다. 2전제(2田制)를 버리고 3전제를 도입함으로써 농업의 생산성이 50% 이상 증가하였다. 물론 말의 사용은 교통의 발전을 초래함으로써 물류와 교역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암흑기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유럽의 중세는 종교의 질곡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고초는 종교적 편견이 인간을 얼마나 억압할 수 있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기술 더욱이 과학의 발전이 가속적으로 일어난 것은 산업혁명 이후 19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발전은 기술적인 것이 대부분이고 과학의 대진전은 아마도 지동설과 중력의 발견 정도였을 것이다. 인간의 긴 행로에 비하면 찰나와 같은 기간에 증기기관, 공장제, 교통혁명 등이 나타난 1차 산업혁명, 전기, 일관생산, 내연기관, 표준화 등을 바탕으로 한 2차 산업혁명, 컴퓨터, 정보통신, 전자공학, 생산 자동화, 정보화에 따른 3차 산업혁명, 그리고 빅 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드론, 스마트 공장, 스마트 폰, 3D 프린팅, 지능형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 등장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

인간을 물질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과학과 기술이었다. 여성이 가사노동의 멍에로부터 해방된 것도 전기, 수도, 가전제품의 발달과 같은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국제교류를 할 수 있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자가용으로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임박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혁신과 변화의 결과 인간은 얼마나 더 행복해진 것일까?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이 그런 힘과 능력에 걸맞은 윤리와 배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일까?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을 보면 전혀 아닌 것 같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한 지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되는 시대에 그에 비례하는 배려와 사랑을 추구하기보다는 야망과 정복을 꿈꾸는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이름 모를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는 시골의 이른 아침에, 창을 열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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