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검사도 헷갈리는 문제

입력 2024-06-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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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가서 제일 처음에 배우는 게 그거예요. 배임하고 횡령하고 어떻게 구별하냐. 답은 ‘모른다’예요.”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배임죄의 모호성에 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도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게, 구분이 어려운 판례만 수백 개”라고 덧붙였다.

배임과 횡령은 재벌 총수 일가 수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혐의다. 두 범죄는 형법 제355조(횡령‧배임)와 제356조(업무상 횡령‧배임)에 함께 규정돼 있어 ‘신뢰 관계를 저버리고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 뿌리가 같다.

검찰도 인정하는 배임과 횡령의 유사성은 실제 대법원 판례에도 언급돼 있다. 대법원은 “횡령과 배임은 신임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같은 죄질의 재산범죄”라며 “법원은 배임죄로 기소된 공소사실에 대해 공소장 변경 없이도 횡령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99도2651 판결)

명문상 차이점이 있다면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주체다. 대상도 횡령은 ‘재물’, 배임은 ‘재산상의 이익’으로 규정해 배임죄가 조금 더 포괄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4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원장이 재계 달래기용으로 꺼내든 ‘특별배임죄 폐지’가 연일 뜨거운 감자다. 형법의 배임죄 폐지가 어렵다면 상법의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고, 이사가 합리적 판단을 내렸다면 민형사적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주장이다.

이후 ‘상법 개정은 경영권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는 1대 1 교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등 여러 지적이 나왔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배임죄 기소를 가장 많이 했던 검사가 왜?’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현재 미필적 고의까지 배임죄를 적용하고 있어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라며 “배임죄 기소를 많이 해본 입장에서 배임죄 폐지를 말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배임죄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횡령죄와 구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배 행위나 손해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 원장도 과거 검사로서 이런 문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배임죄 폐지론’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범죄의 구성 요건이 모호하다는 이유만으로 성급히 폐지를 논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기존에 배임죄로 처벌해 오던 것 중 부당한 목적으로 주식이나 회사를 고가로 인수하는 등의 특정 행위는 횡령이나 사기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적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 중심 지배구조’ 특성상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배임죄가 필요한 것은 맞다. 섣부른 ‘폐지’보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법을 구체화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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