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공급절벽' 우려, 숫자보다 중요한 신뢰

부동산 시장에 '영끌족'이 돌아올 조짐이다. 집을 사려고 낸 빚은 가파른 증가세고 첫 집 마련에 뛰어드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5723억 원으로 한 달 새 5조3415억 원 증가했다. 2021년 7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 급증을 이끌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5조8466억 원 늘었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 폭을 웃도는 수치다.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나타나면서 서둘러 집을 사려는 수요가 확대된 영향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동향을 보면 7월 첫째 주(1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15주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상승 폭은 0.2%로 2021년 9월 셋째 주 이후 가장 컸다. 수도권도 오름폭을 확대하며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아파트 거래량은 4978건으로 2021년 5월(5045건) 이후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6월 거래 건수는 아직 신고기한이 많이 남았지만 벌써 4500건이 넘었다.

특히 무주택자들이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올해 1~5월 서울에서 생애 첫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주택 등)을 구매한 사람은 총 1만693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7% 증가했다. 이 중 30대는 7333명으로 70%가량 늘었다.

젊은 층이 은행 빚을 내며 내 집 마련을 서두르는 것은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폭등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전국 아파트 착공 실적이 3만7793가구로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공급 물량 축소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집값 급등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주택산업연구원도 2020~2024년 누적 주택 공급 부족량이 86만 가구라고 분석하면서 내년이나 내후년 공급 부족에 의한 집값 폭등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패닉 바잉' 양상이 나타나자 정부는 최근 연이어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17일 내년까지 매입임대주택 12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고 이달 3일은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10만 가구, 공공청사 복합개발을 통한 공공임대주택 5만 가구 공급 계획을 밝혔다.

바로 다음 날인 4일에는 올해 하반기 중 수도권 중심 2만 가구 신규 택지 발굴, 2년간 시세보다 저렴한 비아파트 12만 가구 공급 계획을 제시했다. 3기 신도시 등 기존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3기 신도시 공급이 가시화되면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될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 등을 고려할 때 서울 주택 가격이 추세 상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란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분주한 정부의 행보가 수요자들을 안정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두려움의 원인이 정부가 공급하겠다는 주택 수가 아닌 정책 실행에 대한 불신에 있다는 점에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정부가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 정책을 현실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지연되더라도 공급된다는 확신이 있고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면 불안한 마음으로 무리해서 집을 살 까닭이 없다.

그런 점에서 다음에 나올 정부의 발표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다짐이 아닌 3기 신도시 등 기존 정책을 실행할 명확한 로드맵, 착공 지연 등의 원인인 공사비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법과 확실한 약속 같은 것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