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12년 역주행한 유통산업발전법

입력 2024-07-09 05:30 수정 2024-07-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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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유통팀장 당시 매주 루틴(습관적인 특정 작업)이 하나 있었다. 매주 일요일 0시를 기해 [대형마트 휴무일] 말머리 기사를 예약 출고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기사가 항상 일요일 오전 기사 중 최다 조회 수를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기사는 단 1.5매짜리 단신이었다. 대형마트 빅3 기업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이번 주 일요일에 휴무인지 아닌지 알려주는 내용이 전부였다.

기사 말미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국내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휴무일로 지정,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이런 친절한 설명이 붙지만, 격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형마트 일요일 휴무일은 소비자에겐 매번 혼돈을 일으켰다. 특히 한 달이 5주로 구분돼 첫날이 일요일인 경우, 둘째·넷째 주 일요일이 헷갈린다는 이들이 많았다. 매주 일요일 해당 기사의 조회 수가 높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형마트 휴무일을 헷갈리는 소비자들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원인은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있다. 2012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유통법은 한 차례 개정됐다. 대형마트의 월 2회 공휴일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매일 자정~오전 10시, 온라인 사업도 해당) 등이 골자였다.

하지만 애초 법 취지와 달리 전통시장 매출은 눈에 띄게 늘지 않았고 국내외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되레 대형마트만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유통 채널에서 대형마트와 온라인 마켓 비중은 각각 27.8%, 28.4%로 엇비슷했다. 하지만 2024년 4월 기준 대형마트는 13.3%로 절반 이상 비중이 줄어든 반면 온라인 마켓은 49.8%로 비중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채널의 시장 점유율이 10년 만에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의무휴업에 따른 지역상권 활성화 효과도 미미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의 신용카드 빅데이터 활용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주변 반경 3km 이내 상권 매출은 유통법 시행 이듬해인 2013년 36.9%에 달했지만 2016년엔 6.5%로 급감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과 영업일의 소비금액을 비교해도, 의무휴업일 주변 점포 소비금액은 8~15% 감소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을 경우, 인근 상권 매출 증대는커녕 되레 상권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12년간 유통법 시행의 결과가 이러한 데도, 입법부의 유통법 개정안 노력은 거북이걸음에 가깝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폐지와 온라인 새벽배송 허용을 담은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도 결국 폐기됐다. 22대 국회가 최근 겨우 막을 올렸지만, 유통법 개정은 여야 기 싸움에 또 뒷전이다. 이러니 답답했던 지방자치단체가 급기야 조례 개정에 나섰다. 지난해 2월 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고, 뒤이어 청주, 서울, 부산시까지 속속 평일 휴업 대열에 합류했다.

매주 일요일 영업이 시작되자, 시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1월 28일 서울시에서 처음 대형마트 일요일 영업을 허용한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현장도 그러했다. 한 소비자는 "일요일마다 영업 여부 확인하는 게 너무 귀찮았는데, 그런 수고 없이 일요일 장보기를 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서초구는 평일휴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국 최초로 이달부터 영업제한 시간까지 풀어 새벽배송을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움직임이 전국 단위로 확산하려면 유통법 개정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한 교수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12년 간 누구도 발전 못 한 유통산업발전법, 차라리 유통퇴행법이라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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