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7% 오른 시급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경영계가 제시한 최종안이다. 세 차례 수정안 제시와 심의 촉진구간 내 최종안 제시에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최임위는 올해도 표결로 최저임금을 정했다.
노·사 모두 불만이 많다. 노동계는 공익위원이 심의 촉진구간으로 제시한 1.4~4.4%가 애초에 사용자 측에 유리한 안이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이 동결되지 않은 점, 업종별 구분 부결로 내년에도 단일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점 등에 유감을 표명했다.
사회적 논의로 결정된 최저임금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은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기인한다. 노·사는 제한된 기간에 시장판 흥정하듯 최저임금 요구액을 깎거나 높이고, 협상이 불발되면 다수결로 최저임금을 정한다. 객관성, 합리성과 거리가 멀다. 올해는 심의 기간도 짧았다. 노·사는 8차 회의까지 도급제 적용, 업종별 구분 여부를 놓고 논쟁했다. 최저임금 수준을 논의한 건 9~11차 회의, 단 3일뿐이다. 제대로 된 심의가 애초에 어려운 구조였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끝난 만큼, 이제라도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내년 최임위가 재개되는 3월까지 8개월이란 시간이 있다.
먼저 심의자료를 다양화해야 한다. 노·사는 실태생계비,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최저임금 미만율, 수용능력 등을 제시하는데, 이는 각자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인상률의 명분에 불과하다. 임금 정책은 노동시장과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만, 노·사가 제시하는 자료들은 예측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고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감소할 것이다’, ‘영세·중소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져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정도다.
‘최저임금법’에 제시된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의 기준도 미래를 예측하는 지표는 아니다.
일례로,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건설업, 조선업 등의 ‘상대임금’이 하락한다. 이는 건설업, 조선업 등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덜 어려운 일자리로 옮겨갈 유인이 된다. 그 결과로 3D(어려운·더러운·위험한) 업종의 인력난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낮으면 노동시장 내 격차가 커진다.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조합은 최저임금과 무관하게 매년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본인들의 임금수준을 높이지만, 조직되지 않은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에 따라 본인들의 임금수준이 결정돼서다. 이는 구직자들의 대기업·정규직 쏠림을 더 가속화할 수 있다. 이렇듯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 마래 상황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둘째,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전문가들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 노·사는 각각의 이해관계만 대변할 뿐, 경제 전반을 살펴보지 못한다. 따라서 전문가를 활용해 미래 예측력을 높이고, 이를 토대로 최저임금을 논의해야 한다. 단, 노·사의 참여·결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자료 제시, 적정 논의구간 설정 등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가 2019년 추진했던 개편안과 유사한 방식이다. 당시 정부는 결정구조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최임위가 최저임금 수준 심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급제 적용·업종별 구분을 국회나 정부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상 최임위는 최저임금 심의뿐 아니라 최저임금 적용 사업의 종류별 구분에 관한 심의, 최저임금제도 발전을 위한 연구·건의 등도 수행하게 돼 있다. 최임위가 법정 심의 기간인 90일 이내에 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최저임금 수준 심의를 위한 기간만 줄여 올해 같은 ‘졸속 심의’를 초래한다.
법률에 규정된 최임위의 기능 중 현실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기능은 법률에서 정하거나 시행령에 위임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최저임금 심의의 생산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