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역지사지

입력 2024-07-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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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 같아요?”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진 분명 환자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내가 환자가 되는 순간 확률은 무의미해졌다. 하긴 위암이 아닌데, 위를 잘라내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 전 위궤양이 보여 조직검사를 한 환자였다. 결과도 위궤양,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이유를 설명하고 치료한 후 다시 검사하자고 설득했다. 재검사에서도 위궤양, 그러나 모양이 꼭 암처럼 보였다. 결국 대학병원에 의뢰했고 우리 병원과 소견이 일치했다. 조직검사는 위궤양이지만 위암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니 수술해야 한다는.

염색체 분석을 통해 암의 치료를 결정하고, 메스를 대지 않고도 뇌 속 깊숙이 위치한 암까지 제거하는 시대라도 아직 명확히 결론 내리지 못하는 질병들이 있다. 췌장의 낭종성(囊種性) 병변의 일부와 위점막(粘膜)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위의 종양이 그것이다. 수술을 해봐야 결론이 나고, 암이 아닌 경우라도 수술하는 불운을 떠안아야 할 수 있다.

며칠 동안 환자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수술을 받을까?’ 오랜 고민 중에 내가 진짜 그 환자가 되던 순간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라면 수술을 받아보겠습니다.”

환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이 지난 후 그분이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위의 일부만을 절제했고, 결과는 위에 숨어있던 암이 발견되었다.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바윗덩이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답은 맞혔지만, 마냥 기뻐할 순 없는 노릇, 앞으로 환자가 이겨내야 할 힘든 치료 과정이 떠올라서였다. 진료를 마칠 때쯤 그간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그런데 어떻게 수술을 받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나요?”

환자분은 살며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대답을 들으러 오던 날, 선생님이 저보다 더 환자 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잖아요. 전 오히려 선생님이 수술받아야 할 환자인 줄 알았다니까요.”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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