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사이] 32. 미중 과학기술 경쟁의 서막

입력 2024-07-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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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외국 이공계 인재 유치에 총력전
‘인력·R&D·정책’에서 약진 두드러져

“미국비자가 안 나와 중국학자가 미국에서 개최되는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기초 과학기술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필자의 칭화대 동문이자 이공계 교수인 C교수의 애기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2022년 10월 미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공계 중국학자들의 미국비자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대중국 첨단기술 규제가 기초 과학기술 연구자로 확대되면서 향후 미국의 대중국 과학기술 봉쇄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를 발간하는 영국 스프링거 네이처가 전 세계 최상위 학술지 145종에 게재된 과학 논문수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국가별·대학별 순위인 ‘2024 네이처 인덱스’ 결과가 발표되자 그 결과를 두고 미국 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네이처 인덱스는 순수 자연과학 분야에 가장 권위 있는 지표 중 하나로 해당 국가의 기초과학 역량을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초과학역량 1위 차지

그 인덱스 결과를 보면 종합순위에서 중국이 2만3172로 전년 대비 13.6% 증가해 1위를 차지한 반면, 미국은 2만292로 전년 대비 7.1% 하락하면서 2위를 차지했다. 2014년 처음 네이처 인덱스 지수를 발표한 이래 중국은 매년 성장하며 2023년 물리·화학 등 영역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생명과학·보건의학 등을 포함한 전체 총점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올해 종합순위에서 미국을 제치고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대학별 순위를 보면, 하버드대(1위)·MIT(10위)를 제외하고 2~9위까지 모두 중국대학이 차지했다.

과학분석 회사인 클래리베이트(Clarivate)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우수 과학전문 저널 국가별 점유비중을 보면 2003년에는 미국이 중국보다 20배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격차가 줄어들었고 결국 미국을 추월했다. 10년이 지난 2013년 미국논문이 중국보다 4배 많았지만, 2022년 중국 논문이 미국과 EU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미국 내에서는 중국이 과학기술 논문의 양적 수만 늘어날 뿐 질적 영향력은 아직 미흡하다는 의견과 네이처 인덱스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중국 과학기술논문과 연구역량이 이미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는 반대의견이 충돌하며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중국이 생물학에서 물리학까지 전 세계 최첨단 연구를 주도하며 과학기술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특집 기사를 내면서 미국 내 논쟁에 불을 지폈다. 비슷한 시기 조지타운대학교 안보신흥기술센터의 보고서도 발표되면서 중국 과학기술 굴기에 대한 대비와 견제 그리고 미국 과학기술인재 육성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다. 미중 간 치열한 과학기술 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다.

보고서는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로봇공학 등 AI 표준설정 방식에서 미중 간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고, AI 연구논문 수도 중국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중국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영역의 막대한 인적자원을 주목해야 하며, 향후 우수한 과학기술인재 풀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미래 중국 과학기술 굴기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중 간 배출되는 STEM 박사인력을 비교해도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STEM 전공 박사 배출 인력이 중국이 7만7000명으로 미국(약 4만 명)보다 2배 이상 많고, 외국 국적을 제외한 순수 미국인 박사인력만 보면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만약 STEM 전공의 학사·석사생까지 포함하면 중국이 약 450만 명으로 미국(약 60만 명) 보다 7.5배 많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과학기술회의·국가과학기술상 시상식 총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과학기술회의·국가과학기술상 시상식 총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뉴시스
트럼프 집권시 反이민정책 우려

문제는 만약 트럼프가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될 경우 바이든의 친이민 정책에서 반이민정책으로 회귀하면서 미국 내 STEM 전공자 수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9년 기준 미국에서 STEM 전공으로 박사를 받은 3만3759명 중 약 39%가 외국인이고, 미국 내 해외유학생 비중이 34.6%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반도체·AI 등 미국 내 STEM 관련 필요 인력이 약 350만 명은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정부는 엄청난 자금지원을 통해 해외우수 이공계 인재를 계속 유치하고 있다. 중국 국가자연과학재단(NSFC)은 2023년 외국학자연구기금 프로젝트를 통해 외국 STEM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외국청년학자, 외국우수청년학자 및 외국우수학자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자금을 지원하며, 2024년부터 STEM 외국학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연구사업 유형에 따라 매년 최소 20만 위한(약 3800만 원), 최대 80만 위안(약 1억5000만 원)까지 정부가 지원하고, 그에 맞게 외국학자가 근무하게 될 중국 지방정부 연구소 혹은 대학이 매칭비용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R&D투자 격차 급속히 축소돼

두 번째 주목해야 할 것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비용의 미중 간 격차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기초연구, 중국은 기초+응용연구에 중점을 두며 양국간 치열한 R&D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R&D 지출(구매력평가 기준)은 미국이 8060억 달러로 중국(약 6680억 달러)을 앞서고 있지만 중국 R&D 지출 증가율이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올해 중앙정부 차원의 과학기술 경비예산만 3709억 위안(약 509억 달러)으로 전년대비 10% 늘어났다. 과학기술 역량을 두고 펼쳐질 미중 간 경쟁의 핵심인 인적자원과 R&D, 정책지원 등 측면에서 중국의 약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과학기술 경쟁력의 지표는 과학논문을, 기술혁신의 지표는 국제특허출원(PCT) 특허를 사용한다. 중국의 양적 과학기술 굴기를 두고 평가절하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지만, 질적 지표인 논문의 피인용지수 상위 10% 및 최상위 1% 논문 수도 이미 중국은 미국을 추월한 상태다. 지난 6월 중국 과학기술대회 및 국가과학기술장려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첨단기술인재 양성과 2035년 기술자립의 전략적 목표를 명확히 제시했다.

미중 간 치열한 과학기술경쟁 속에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의 토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몰려온다. 최근 정부의 R&D 비용 축소로 인해 한국의 젊은 이공계 박사인력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현상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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