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 이대로 '마블의 예수님' 될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4-07-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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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데드풀울버린, 마치 물과 기름을 연상케 하는 조합인데요. 상극인 두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이 24일 개봉했습니다.

개봉 첫날 '데드풀과 울버린'은 23만81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일주일 연속 전체 예매율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개봉 첫날부터 흥행 청신호를 켠 건데요.

이는 지난해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오프닝 스코어 16만3314명을 큰 폭으로 뛰어넘은 수치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은 은하계 최고의 팀 '가디언즈'의 화려한 피날레를 그린 작품으로, 가디언즈 팬들을 웃고 울게 하면서 420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데드풀과 울버린'이 청소년 관람 불가(청불) 영화라는 겁니다. 관람 나이 제한이 있는 청불 등급은 통상 흥행 걸림돌로 여겨져 왔는데요. 그러나 영화는 올해 개봉한 청불 영화는 물론, 최근 3개월간 개봉한 작품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쓰면서 극장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죠.

'데드풀과 울버린' 흥행세는 일단 주말까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25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예매 관객 수 18만8938명을 기록하며 예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사실 '데드풀과 울버린'의 어깨는 무겁디무거울 겁니다. 최근 흥행 부진의 늪에 빠진 마블의 '구세주'가 돼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죠.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엑스맨', MCU 세계관 본격 합류…'데드풀' 정통(?)은 여전해

'데드풀과 울버린'은 히어로 생활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 분)이 예상치 못한 거대한 위기를 맞아 모든 면에서 상극인 울버린(휴 잭맨 분)을 찾아가면서 펼쳐지는 도파민 폭발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영화 관람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정보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관 통합인데요. 어른들의 주머니 사정(?)이 영향을 미친 터라 조금 복잡하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영화를 본다면 속속 등장하는 개그에 더 당당히 웃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이 등장하는 '엑스맨', 그리고 '어벤져스'는 모두 마블 코믹스에서 시작했습니다. 마블 코믹스는 다양한 만화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DC 코믹스와 함께 히어로 만화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위엄을 떨쳤는데요. 1990년대 들어선 시장이 위축되면서 파산 위기에 내몰렸고, 영화 제작 판권을 곳곳에 팔아야 했습니다. '엑스맨'과 '판타스틱 4'는 20세기폭스가, '헐크'는 유니버설이, '스파이더맨'은 소니 소유가 되는 등 히어로 판권들은 다양한 영화사로 흩어졌죠.

20세기폭스는 '엑스맨' 시리즈 제작에 열을 올렸습니다. 2000년 '엑스맨'을 시작으로 2018년 '데드풀 2'까지 총 13편의 시리즈가 제작됐는데요. 많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팬덤까지 구축했죠.

월트 디즈니 컴퍼니(디즈니)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공격적으로 자회사를 늘리기 시작했는데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어벤져스'도 자연스럽게 디즈니에 합류했습니다. '어벤져스' 외에도 마블 코믹스의 다양한 판권을 갖고 싶었던 디즈니는 2019년엔 20세기폭스까지 인수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회사로 편입된 20세기폭스는 20세기 스튜디오로 사명을 변경했고, '엑스맨', '판타스틱4' 판권도 디즈니 손바닥에 들어오게 됐죠. '엑스맨' 세계관과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세계관이 같은 선상에 놓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성과를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요? 디즈니는 MCU 페이즈 4에 해당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에 곧장 '엑스맨' 찰스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 분) 등을 등장시키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을 통해선 본격적으로 '엑스맨' 히어로들이 MCU 세계관에 등장하게 됐습니다. '어벤져스' 멤버가 되고 싶어 면접까지 본 데드풀, 이게 실화인가(?) 싶죠. 빌런 역시 '엑스맨'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데요. 강력한 염력과 텔레파시 능력으로 시간선을 파괴하려는 메인 빌런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 분)는 '엑스맨'을 이끈 프로페서 X, 찰스 자비에 교수의 쌍둥이입니다.

그렇다고 '데드풀' 특유의 피 터지는 액션, 키치한 유머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데드풀이 디즈니로 이적하면서 수위가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는 있었지만,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팬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디즈니 MCU 최초 R(청불)등급답게 수위 높은 19금 개그로 아슬아슬한 선을 타는데요. "폭스 꺼져. 나는 디즈니로 간다" 등 데드풀의 역사를 알면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작품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라이언 레이놀즈X휴 잭맨 '열일' 이유 있었네…마블 구하기 '특명'

영화 개봉에 앞서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은 홍보를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3일 한국을 찾아 고척돔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한 데 이어 다음 날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시원한 입담을 뽐냈죠.

6일엔 페스티벌 '워터밤 서울 2024'에 등장했고 7일엔 SBS 음악 프로그램 '인기가요'에 출연해 1위 후보를 소개하며 신선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KBS2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출연해 류수영의 요리를 맛보는가 하면, '본인등판', '문명특급', '숏박스' 등 유튜브 웹 예능까지 섭렵했죠. 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신곡 '칙 칙 붐'(Chk Chk Boom) 뮤직비디오에도 깜짝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습은 두 사람이 주연을 맡은 '데드풀과 울버린'의 어깨가 무겁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MCU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 등을 포함한 1세대 히어로들이 은퇴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세계관 확장까지 꾀하며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려 들었지만,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을뿐더러 흥행에도 줄줄이 실패했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터널스'(2021), '토르: 러브 앤 썬더'·'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2022),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2023) 등이 모두 부진한 성적을 썼습니다. 특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빌런 '캉'은 어벤져스 중 최약체로 분류되는 앤트맨에게 패배하면서 마블 팬들이 버리지 못했던 일말의 기대감까지 박살 냈는데요. 우주 균형에 대한 철학적 고찰, 강력한 힘, 관객마저 압도하게 한 카리스마로 어벤져스 멤버들을 무릎 꿇게 한 타노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감이라는 게 팬들의 중론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개봉한 '더 마블스'는 제작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2억 달러(약 2770억 원)의 수익을 내 역대 마블 영화 중 최저 성적을 기록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오죽하면 디즈니가 지난해 12월 "(해당 영화의) 해외 수익을 더 이상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까요.

'멀티버스'(다중우주) 설정에 대한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세계관으로 피로감을 선사, 진입 장벽을 높이는 데다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리즈물과의 연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돈밖에 모른다'는 일부 팬들의 비아냥이 쏟아진 겁니다. 디즈니로선 혹평 세례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시점인데요. 이때 꺼내 든 카드가 데드풀, 그리고 울버린이라는 거죠.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데드풀은 시간관리국(TVA)에 끌려간 후 어벤져스처럼 중책을 맡게 될 거라는 말을 듣더니 감격에 차 "내가 구세주구나. 내가 마블의 예수님(I am the Messiah. I am Marvel Jesus)"이라고 오두방정을 떱니다. 디즈니의 상황을 알고 나면 웃기기만 했던 대사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죠.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데드풀의 입을 빌려 디즈니는 자학 개그에도 나섭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무너진 20세기폭스의 잔해를 밟고 올라서고, "폭스 놈들아, 난 디즈니로 간다", "멀티버스는 끝내자. 하기만 하면 실패하잖아!" 등 주옥같은 대사가 쏟아져 팬들을 웃게 하죠.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가 언급한 재미 포인트는?…"현실과 가상의 벽 허무는 장면"

17년에 달하는 우정을 이어온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은 할리우드 대표 절친으로 거론됩니다. 친구로서의 케미스트리는 물론 데드풀, 울버린으로서의 조합도 흥미진진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요. 입을 쉬지 않고 놀리는 데드풀에게 울버린은 면박을 주지만, 어느새 이들이 보여주는 브로맨스는 잔잔한 울림까지 줍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휴 잭맨과 함께 출연한 유튜브 웹 예능에서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데드풀과 울버린의 대화는 사실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의 대화"라며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이라고 밝혔는데요. 스파이더맨처럼 여러 명의 배우가 하나의 히어로를 연기한 것과 달리 두 사람은 각각 데드풀, 울버린을 연기한 '유일한 배우'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관전 포인트로 "영화를 보면 데드풀이 울버린에게 말하는 건지, 라이언 레이놀즈가 휴 잭맨에게 말하는 건지 확실치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며 "그게 재밌을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는데요. 곳곳에 등장하는 유쾌한 장면은 물론 쿠키 영상까지 폭소를 유발하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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