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19세기 조선의 엔터테이너 秋史

입력 2024-07-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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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서예가ㆍ한국미협 캘리그라피 분과위원장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충청도 가야산 서쪽 해미 한다리에 터를 잡은 김씨가문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예술가다.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노과(老果),승연노인(勝蓮老人) 외 많은 호를 사용했다. 추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질이 남달랐으며 북학파의 거두 박제가의 가르침을 받아 연암 박지원의 북학사상과 청나라 고증학에 뜻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그의 나이 24세에는 생부 김노경이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자제군관으로 수행하여 연경(베이징의 옛 이름)에 머무르면서 당대의 대학자인 옹방강, 완원 등과 교류하며 금석학의 기본과 서법의 학문적 체계 수립에 영향을 받았으니 완원에게는 완당이라는 아호를 얻기도 했다.

추사는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로 화순옹주는 추사의 증조모가 되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높은 벼슬에 오르고 임금의 총애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쟁으로 집안은 파국을 당하고 자신은 오랜 유배생활을 하는 등 끝내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었다.

추사가 옹방강이나 완원에게 이론적 영향을 받았지만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학예(學藝)의 성취는 이 유배생활을 하는 중에 그의 천부적 창의력과 노력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울분과 불평을 토로하며, 험준하면서도 일변 해학적인 면을 갖춘 그의 서체는 험난했던 그의 생애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곧 그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그대로 붓끝을 통하여 표현된 것이다.

제주에 이어 함경도 북청까지 12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친 그는 과천에 있는 별서(別墅) 과지초당(瓜地草堂)과 봉은사(奉恩寺)를 내왕하면서 서화를 즐기고 후학을 지도하는 한가로운 생활을 하며 말년을 보냈다.

▲예서대련(隷書對聯)
▲예서대련(隷書對聯)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최고의 반찬은 두부와 오이,생강,나물)/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는 아내와 자식, 손자가 함께 앉는 것)’<사진>은 추사가 생을 마친 1856년 71세에 쓴 글씨로 고농(古農)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고농에게 준 것이다. 협서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雖腰間斗大黃金印/食前方丈 侍妾數百/能享有此味者幾人’ (-爲古農書.七十一果)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비록 허리춤에 한 말만한 큰 황금인을 차고/밥 앞에 시중드는 여인들이 수백 명 있다 해도/능히 이런 맛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농을 위해 쓰다. 71살의 과천노인)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하고 최고의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가족끼리 모여서 두부와 오이, 나물 등 소박한 음식으로 즐기는 재미에 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모진 일생을 지나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예찬하는 추사 만년의 따뜻한 인간미가 묻어나는 문구로 꾸밈이 없는 졸박한 느낌과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엿보이면서도 추사 특유의 굳센 필획과 조형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당시 가세가 기울며 궁핍한 생활에 소박한 반찬을 상에 올렸을까 싶지만 기실 두부는 서민들이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다.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무골육(無骨肉), 숙유(菽乳)로도 불리며 주로 사찰에서 만들어 부처에게 공양하거나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으로 사대부들은 두부를 오미(五美)를 갖춘 음식이라 했으니 맛, 향, 색, 모양, 먹기에 간편함 등을 들어 귀하게 여겼다.

생강은 천자문에서도 채중개강(菜重芥薑)이라 하였으니 또한 말해 무엇 하리.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들이요, 가족의 힘이 가장 위대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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