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민] ‘컬렉션의 꽃’ 굴벤키안박물관

입력 2024-08-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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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박물관에서 ‘어, 이 그림 책에서 봤는데’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사진도 찍고 돌아와서는 검색까지 해본다. 뭔가 얻어간다는 느낌에 입장료도 아깝지 않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가 그린 ‘긴 의자에 앉은 모네 부인(Portrait of Madame Claude Monet)’이 그랬다. 또 렘브란트의 작품 ‘지팡이를 든 노인(Old man with a stick)’을 마주했을 땐 생동감 있는 눈빛과 손등의 주름, 핏줄을 보면서 살짝 소름이 돋기도 했다.

리스본에 있는 칼루스테 굴벤키안 박물관(Calouste Gulbenkian Museum)은 고대 이집트의 조각상, 그리스의 금화부터 20세기 초 회화 작품까지 1000점이 넘는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대표적 박물관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작품들이 한 개인의 수집품이라는 사실이다.

▲르누아르의 ‘긴 의자에 앉은 모네 부인'
▲르누아르의 ‘긴 의자에 앉은 모네 부인'
칼루스테 굴벤키안(1869~1955)은 아르메니아 출신의 사업가로 영국의 명문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석유공학을 전공했으며 1920년대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 시리아 지역) 석유탐사·채굴권을 부여받고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살고 있던 런던을 떠나 전쟁의 포화를 비껴간 포르투갈 리스본에 정착해 평생을 살았다.

14세 때 이스탄불의 한 시장에서 고대 그리스 동전을 구입하면서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보인 그는 작품을 보는 남다른 안목으로 당대의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골동품 수집가 및 경매인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6000점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예술품을 사들이는 열정을 보였다.

현재 박물관의 예술품들은 지리적 영역과 연대순으로 구분해 전시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유물을 시작으로 이슬람 세계의 뛰어난 직조기술과 수학, 과학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은 경이로움을 더한다.

▲렘브란트의 ‘지팡이를 든 노인'
▲렘브란트의 ‘지팡이를 든 노인'
회화·조각 작품 전시실은 이 박물관의 ‘백미’다. 작가들의 면면을 봐도 루벤스, 렘브란트, 윌리엄 터너, 밀레, 로뎅, 르느아르, 모네, 마네, 드가 등 거장들이 즐비하다. 모든 작품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면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찾아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고가구 컬렉션, 액세서리 코너, 섬세함이 돋보이는 일본 세공품, 우람한 중국 도자기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건 굴벤키안이 우리나라의 예술품과는 인연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하철역 Praca de Espanha와 인접해있어 접근성도 좋고 박물관을 둘러싸고 있는 굴벤키안재단 정원은 연못과 녹지가 잘 가꿔져 지역주민들에겐 산책길로 인기가 높다. 핵심적인 작품만 찾아서 보는데도 2시간이 훌쩍 넘는다. 훌륭한 예술품을 접한 감흥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리스본에 여행을 왔다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리스본(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cheh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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