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한국 축구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프로축구 K리그1 강원 FC의 '특급 고교생' 양민혁(18)이 프리미어리그(PL)의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다는 얘기였죠. K리그에서 뛰던 고등학생이 갑자기 손흥민(32)의 동료가 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양민혁에게 쏟아졌습니다.
이번 시즌 데뷔한 양민혁은 27경기에 출전해 8골 5도움으로 리그를 씹어 먹으며 토트넘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토트넘은 양민혁을 영입하는 데 400만 유로(약 59억 원)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며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이적이 아님을 알렸죠. 그리고 이는 세계 축구 시장에서 외면받던 과거와 달리 이제 K리그가 빅리그(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 진출이 가능한 경쟁력 있는 리그라는 뜻입니다.
사실 양민혁 이전에도 K리그 선수들의 유럽 무대 진출은 최근 몇 년간 급증하고 있습니다. 설영우(26·츠르베나 즈베즈다), 김지수(20·브렌트포드), 오현규(23·KRC 헹크), 엄지성(22·스완지시티) 등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유럽 클럽으로 직행해 도전에 나서고 있죠. 특히 지난해 EFL 챔피언십리그(잉글랜드 2부) 스토크 시티로 이적한 배준호(21)는 이적 첫해 '스토크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팀의 에이스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유럽 축구 무대에서 한국 선수를 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셈이죠.
K리그 선수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기존에 유럽 무대에서 뛰던 선수들의 활약입니다. 박지성(43·은퇴)으로부터 시작해 손흥민,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 황희찬(28·울버햄튼 원더러스), 이강인(23·파리생제르맹), 이재성(32·마인츠05), 황인범(28·츠르베나 즈베즈다) 등이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한국 선수에 대한 인식을 개선했습니다. 특히 손흥민은 2021-2022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월드클래스'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은 자연스럽게 한국 선수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 나갔죠.
시장의 변화도 중요합니다. 과거 유럽 클럽들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망주들을 저렴한 가격에 수급했습니다. 가격에 비해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남미에 많아 사실상 아시아는 소외됐었죠.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엄청난 자본을 자랑하는 중동, 중국, 미국 리그 등이 비싼 금액을 아낌없이 지불하며 남미 선수들을 휩쓸었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시장 가격도 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정상을 달리는 한국, 일본 시장이 돌파구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럽 시장 크기와 비교했을 때) 적은 금액으로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어 인기를 끌기 시작했죠. 여기에 유교 사상(?)으로 인해 선수들이 사생활 문제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는 점도 큰 매력 포인트로 다가왔습니다.(해외축구를 보다 보면 생각보다 사생활 문제가 자주 터집니다).
사실 일본은 우리보다 몇 년 앞서 수많은 선수를 유럽으로 내보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군대 문제가 항상 발목을 잡았죠. 그러나 최근 어린 선수들이 빠르게 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하며 유럽 진출에 길이 열렸습니다. 오현규, 이영준(21·그라스호퍼) 등이 빠르게 군대를 다녀오고 유럽 진출에 성공했죠. 여기에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군 면제를 받은 해외파 선수들이 늘어나며, 군 문제가 해결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해외 클럽들에 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양민혁도 계약에 아시안게임 차출 허용 조항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K리그에서 빅리그로 진출하는 선수들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송민규(25·전북 현대), 정호연(24·광주 FC), 윤도영(18·대전하나시티즌) 등 이미 유럽 클럽들이 관심을 보인 선수들도 리그에 꽤 있죠. 앞으로도 많은 선수가 유럽에 진출해 좋은 활약을 보이고 K리그의 위상을 계속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국내에서도 이제 K리그를 찾는 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거둔 성공 때문이에요. 월드컵 이후 축구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K리그 경기를 찾게 됐습니다. 국가대표 경기는 2~3달을 기다려야 하지만, K리그는 매주 경기가 있거든요. 실제로 월드컵이 끝난 직후 치러진 2023시즌에 K리그는 각종 관중 기록을 갈아치우며 높아진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유료 관중 집계 이후 처음으로 3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2011시즌 이후 12년 만에 평균 관중 1만 명을 달성했어요. 올해도 역대 최소 경기(282경기) 2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세우며 작년보다 더 뜨거워진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특히 양민혁의 소속 팀인 강원 FC가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어요. 윤정환(41) 감독의 지휘 아래 27라운드까지 치러진 현재 승점 50점으로 단독 1위에 올라 있는 강원은 연일 관중 신기록을 써나가고 있습니다. 27라운드 광주FC와의 경기에서 홈 경기장인 강릉종합운동장에 1만3170명이 방문하며 구단 역사상 최다 관중 수를 경신했습니다. 참고로 종전 기록은 25라운드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 기록한 1만2272명이니 그야말로 '매 경기'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셈입니다. 우승은커녕 우승 경쟁도 못 해봤던 팀이 1위를 달리자 강원도민들은 홀린 듯이 경기장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에 양민혁이라는 '슈퍼스타'까지 등장했으니 안 갈 이유가 더더욱 없죠. 월드컵부터 강원까지, 역시 관중을 모으는 데는 좋은 성적만 한 게 없습니다.
차상엽 축구 해설위원은 "양민혁이 토트넘과 계약을 체결한 사례나 제시 린가드(32·FC 서울)처럼 유명한 선수가 K리그로 이적한 게 K리그의 인지도를 올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중계를 나가면) 관중이 점점 늘어나는 게 실감 난다. 올 시즌은 우승 경쟁도 치열해서 볼거리가 늘어난 것도 관중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죠.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K리그지만 긍정적인 요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먼저, 홍명보(55) 감독의 한국 축구대표팀 부임은 K리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2021시즌부터 울산 HD 감독으로 부임해 두 차례의 리그 우승을 이룬 홍 감독은 울산 팬들에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죠. 위르겐 클린스만(60)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경질 이후 홍 감독은 계속해서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됐지만, 그때마다 분명한 거절 의사를 밝히며 팬들을 안심시켰어요.
하지만 지난달 7일 돌연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내정됐다는 기사가 쏟아졌고 이는 곧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홍 감독은 "나는 나를 버렸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터뷰를 남긴 채 울산을 떠났고, 울산 팬들은 큰 배신감에 휩싸였죠.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치던 울산도 갑자기 감독을 잃는 악재 속에 최근 5경기 3패로 흔들리며 1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선임 과정에서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까지 진행되고 있어 불이 붙기 시작한 축구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입니다.
몇몇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도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17일 포항 스틸러스의 수비수 신광훈(37)은 1-1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에 공과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상대 공격수 전진우(25·전북 현대)를 팔꿈치로 가격해 퇴장을 당했습니다. 퇴장으로 숫자가 부족해진 포항은 결국 경기 종료를 앞두고 실점해 패배했죠. 경기 결과도, 매너도 챙기지 못한 최악의 결과입니다.
바로 다음 날인 18일 같은 상황이 다른 경기장에서 벌어졌습니다. 울산 HD의 공격수 주민규(34)가 전반 39분 마찬가지로 공과 무관한 상황에서 상대 미드필더 이재원(27·수원FC)을 팔꿈치로 가격해 퇴장당했어요. 전반부터 한 명이 부족해진 울산은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1-2로 게임을 내줬죠. 주민규와 신광훈은 모두 국가대표까지 경험한 K리그의 베테랑들이며, 반칙을 당한 선수들은 두 선수보다 한참 후배입니다. 모범이 돼야 할 선수들이 이런 반칙을 저지르면 K리그에 대한 인식은 저절로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한국 축구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K리그의 발전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찾아온 인기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경기장을 찾아서 K리그가 꾸준히 발전하기를 간절히 염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