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퍼펙트 화장실’

입력 2024-10-03 18:39 수정 2024-10-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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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신호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가야 한다. 처음 가는 화장실의 경우, 아내는 먼저 다녀온 내게 “깨끗해?”라고 물어본다. 낯선 화장실은 왠지 주저된다. 예전에 부르던 명칭, 변소(便所, 똥집)는 듣기만 해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화장실이라고 한다.

화장실은 원초적인 욕구를 해소해 주는 곳이지만, 막상 볼일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본다. 특히 공중화장실은 누구에게도 별 의미 없는, 주인 없는 장소로 남는다. 이곳을 청소하는 사람들 역시 도시의 화려함 뒤에 있다.

화장실 미화원이 주인공인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가 한동안 회자되었다. 이 영화는 2020 도쿄올림픽에 맞춰 기획된 ‘도쿄화장실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반 시게루 등 일본의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설계한 도쿄 시부야구의 공중화장실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밝고 깨끗하고 멋있는 화장실, 날마다 미화원이 청소를 한다. 퍼펙트하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의 주제지만, 기억나는 이미지는 깔끔하고 세련된 화장실이다.

여러 해 전, 일본 어느 도시의 박물관에서였다. 근·현대 일본의 생활상(변소)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푸세식 변소에서 사용했던 나무변기에서부터 수세식 화변기(和便器), 양변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형식이 어떻든 예외 없이 정결하다.

근대 일본의 문필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음예예찬’에서 변소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그것들은 본체와는 떨어져 푸른 나뭇잎과 이끼 냄새가 날 것 같은 수풀 한쪽에 지어져 있으며 … 그 어슴푸레한 광선 속에 웅크리고 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장지의 반사를 받으면서 명상에 잠기거나 창밖 정원의 경치를 바라보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다 … 그곳에는, 어느 정도의 어두움과, 철저한 청결, 모기 소리조차 들릴 듯한 고요함이 필수조건인 것이다 … 실로 변소는 벌레 소리와 새소리에도 어울리고, 달밤에도 또한 어울려서 사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취를 맛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소재를 얻었을 것이다 … 모든 것을 시로 만드는 우리 선조들은, 주택 중에서 가장 불결한 장소를 오히려 아취 있는 장소로 바꾸고 화조풍월(花鳥風月)로 연결지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만들었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인들은 화장실에서 생활의 의미와 운치를 찾아낸다.

과거엔 좀 점잖게 표현하여 뒷간(측간)이나 변소라고 했다. 요즘엔 화장실(化粧室·restroom)이 대세지만, 해우소(解憂所·근심을 푸는 곳)라는 명칭만큼 시적인 표현이 있을까?

‘아름다운 화장실’로 선정되었다는 문구가 붙어 있는 공중화장실이 있다. 화분이나 각종 경구, 그림 액자, 감미로운 음악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명부를 붙여 놓고 시간대별로 청소상태도 확인한다. 깨끗하다. 그런데 ‘아름답다’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회사 미쉐린은 매년 봄, 식당에 별점을 매기는 식당 및 여행가이드 시리즈를 발간한다. 많은 식당들이 미쉐린 스리스타에 선정되길 바란다. 식재료와 요리법, 서비스 등이 뛰어나면서도 그들만의 철학이 있으면 높은 점수를 받는다. 모름지기 입력이 있으면 반드시 출력도 있는 법. 화장실에도 별점을 매기면 어떨까? 미쉐린 스리스타 화장실에서 아름답게 똥을 누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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