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너머] 손가락 함부로 놀린 죄

입력 2024-10-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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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박꽃 기자
▲사회경제부 박꽃 기자
법원에는 수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개중에서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온라인에서 타인에 대한 무분별한 비방글을 작성하고 괴롭히는 ‘손가락을 함부로 놀린 죄’일 것이다. 실제로 아는 사람이었다면,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면…. 차마 입 밖으로 뱉기조차 어려웠을 흉기와도 같은 발언을 가감 없이 휘두르는 비대면 사회의 일면이다.

관찰되는 사례는 다채롭다. 유튜브 계정 탈덕수용소를 운영하며 가수 강다니엘이 부정한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린 박모 씨는 지난달 법원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16일에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본 피해자의 손편지와 실명을 허락 없이 자신의 SNS에 공개한 김민웅 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형사법상 혐의는 각각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기 이득을 위해 타인의 삶에 회복이 어려운 심대한 상처를 안겼다는 점이다. 박 씨는 강다니엘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의 검증되지 않은 풍문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올리며 2년간 무려 2억5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성추행 피해자의 이름을 세간에 공개하는 전형적인 2차 가해를 범했다.

비슷한 점은 더 있다. 이들 모두 법정에서 각기 다른 이유의 궁색한 변명을 댔다는 것이다. 박 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운영한 채널명에 들어간 ‘탈덕’의 의미조차 모르며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는 믿기 어려운 말을 하더니, 나중에는 “공익을 위해서” 영상을 올린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 공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묻자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김 전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소심 재판에서 “약시와 녹내장으로 시력이 좋지 않아 손편지에 피해자 실명이 기재된 걸 몰랐다”고 했다. 그런 눈으로 나머지 내용은 어떻게 파악하고 “시민 여러분들의 판단을 기대해 봅니다”라는 내용의 SNS글을 올려 피해자의 태도에 대한 주변의 판단을 구했는지 의문스러운 일이다.

재판부는 비교적 엄중한 판단을 내렸다. 탈덕수용소 운영자 박 씨에게 검찰은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지만, 가발까지 쓰고 나와 제 신변을 가리기 급급한 채 변명만 늘어놓던 모습을 본 재판부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선고는 이례적인 일이다. 김 전 교수는 1심 판결이 억울하다며 항소했지만 도리어 형량이 더 늘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않음’을 지적해 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할 목적으로 실명이 기재된 손편지를 SNS에 게시했다”는 점을 꼭 짚어 명시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감각에 비추어보면 ‘속 시원한’ 형량은 아닐 수 있겠지만, 손가락을 함부로 놀린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만큼은 보여주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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