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이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전망이다. 환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의사는 만성적인 시간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주한 서울대 의과대학 정보의학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투데이 창간을 기념해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KBIZ홀에서 ‘인공지능(AI), 건강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개최된 ‘2025 테크 퀘스트(2025 Tech Quest)’에서 ‘의료AI와 의료 마이데이터 시대 건강’ 강연을 통해 이러한 전망을 제시했다.
의료 영역은 일반적인 산업 분야와 달리 수요가 무한하고, 서비스의 아웃컴(Outcome)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건강보험 시스템 내에서 행위별 수가제도에 따라 통제되기 때문이다. 경영자와 마찬가지인 병원은 모든 서비스를 기성품으로 준비하고, 환자들에게 매칭해 제공하면서 최소한의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은 마치 물류 시스템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통찰이다.
김 교수는 “현재 500병상에서 많게는 3000병상까지 규모를 키운 의료기관이 등장하고 있는데, 젊은 세대 의사들 사이에서는 병상의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는 의료 서비스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라며 “컨베이어벨트에 환자를 올려놓고 필요한 것을 주는 구조에서 문제 해결형(problem solving) 헬스케어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데이터와 AI 기술이 미래 의료 환경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기관에는 환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다양한 직종의 인력이 근무한다. 하지만 검사와 처치 등 치료의 전체 과정에서 모든 최종 결정은 의사가 내려야 하며 책임 역시 의사가 지게 된다. 의사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환자들 역시 자신의 치료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 환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많지 않으며, 의사나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정보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김 교수는 “의사는 환자들을 보면서 하루에만 100장이 넘는 법적 책임이 따르는 문서에 서명을 한다”라며 “반면 환자들은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으면서도 의료기관에서 진행하는 거의 모든 치료 프로그램에서 소외돼 있고, 의료진이 알아서 해주기만을 믿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의사의 시간이고, 가장 낭비되고 있는 자원은 환자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의사의 업무 가운데 일부는 AI를 활용해 효율화할 수 있다.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약물상호작용을 AI가 잡아내거나, 현재 의료기관에 도입된 AI 챗봇이나 상담 서비스 등은 병원 내 업무 과부하 해소에 기여한다. 환자들이 스스로 건강정보를 숙지하고, 이를 활용해 일상적으로 건강관리를 실시하면 치료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파편적으로 분산된 개인의 의료정보를 한곳에 통합해 저장하는 ‘헬스 아바타’ 플랫폼을 개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기술은 불가능하겠지만, 의료에 특화된 AI를 개발해 일부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해소하고 환자들의 건강 정보 관련 문해력을 제고하는 과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