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목소리 일원화·가계부채 대처 긍정 평가
전문가 “자신만의 뚜렷한 미션·색깔 정립해야”
업계 “규제만 말고 발전·성장 지원안 관심도”
금융업계와 전문가들은 대체로 김병환 금융위원장을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합격권’ 안에 들었다고 평가한다. 가계부채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 당면한 과제를 큰 혼란없이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점이 적절하다고 봤다.
다만, 금융감독원과의 긴밀한 협의가 잘 이뤄지는지, 김 위원장만의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는지 등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당분간 시장 상황에 따라 ‘관리·감독’과 ‘규제’가 강해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업계에서는 금융산업의 ‘발전’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청이 나온다.
4일 본지가 금융권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김 위원장 취임 100일에 대한 평가를 취재한 결과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가계대출 상황을 봤을 때 정책적으로 총량을 조절하는 현재 기조를 유지하는 게 맞다”며 “잘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도 “금리가 여전히 높아 빚 부담이 커진 상황이 소비·투자 위축으로 연결되진 않을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면서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고 봤다.
금융업계에서는 김 위원장이 금융당국의 목소리를 일원화한 것에 대해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은행권 관계자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내는 스타일이라 생각보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밸런스를 잘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권 관계자 역시 “금감원과 업무 협조가 더 잘 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앞서 9월 초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한 달이 되기 전 가계부채 관련 브리핑 자리를 마련해 가계부채에 관한 정부의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며 금감원과 메시지 조율에 신경쓰겠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금융사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의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금융위는 금감원에 검사와 감독을 위탁하지만, 제재심의 권한은 금융위에 있기에 이런 구조를 잘 활용해 금감원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면서 “금융위의 경우, 정책을 다루는 특성상 시장 상황을 잘 모를 수 있어 금융사와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존재감을 지금보다 더 키워 금융정책의 컨트롤타워는 금융위, 금융위원장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금융위원장이 부채 문제와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내년에는 부채 관리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올해는 가계부채 문제가 두드러졌지만, 내년에는 기업부채, 정부부채까지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전 교수는 “금융위원장은 당장 눈앞의 위기를 타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을 잘 살피고 영업행태 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면서 “통화정책과 금융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현실을 잘 정비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제언했다.
업계에서는 금융업권을 부정적으로 보며 규제만 하기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한 방안도 함께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보다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겨 달라”며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 시행, 빅테크와의 협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는 등 혁신을 위한 ‘판’을 제대로 깔아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계대출 등 굵직한 이슈로 인해 보험업계는 금융위와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며 “보험개혁회의 등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민간 주도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업계의 의견을 잘 청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가계부채, 부동산 PF 부실 우려로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2금융권 관계자들은 당국의 지나친 압박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상호금융업권 관계자는 “업권 전체에 대한 금융당국의 호흡이 지금보다 더 길었으면 좋겠다”면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는 정부의 시그널이 너무 강할 경우 그에 발을 맞춰가야 하는 업권 입장에서는 힘들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규제보다 업권 상황이 개선될 수 있게 ‘당근책’을 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서민금융기관이 서민의 생활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업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대부업의 영업 환경 개선에 대해서는 (금융위에서) 제시한 내용이 없다”며 “저신용자 등 금융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업에 대해 더 면밀하게 살펴주길 바란다”고 읍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