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사립의대가 서울에 수련병원을 운영하면서 지역 인재를 서울로 유출하고 있다. 이런 ‘편법운영’ 행태를 근절하고 지역 의료를 정상화할 법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울산광역시당과 울산건강연대는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지방 사립의대 편법운영 방지 법제화와 공공의료 강화 방안 토론회’를 열고 수도권 협력병원에서 교육과 수련을 진행하는 지방 사립의대 운영 행태를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는 을지의대, 울산의대 등 지방 사립의대 교수들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의료계와 시민사회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무늬만 지방의대’로 운영 중인 사립 의대들의 현황을 고발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학의 정규 교육은 교육부가 인가한 본·분교나 캠퍼스 내 시설에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울산대(서울아산병원) △성균관대 의대(삼성서울병원·강북삼성병원) △건국대 의대(건대병원) △동국대 의대(동국대일산병원) △순천향대 의대(순천향대서울병원·순천향대부천병원) △가톨릭관동대 의대(국제성모병원) △을지대 의대(을지대병원·의정부을지대병원) △차의과대(분당차병원) △한림대 의대(성심병원) 등 적지 않은 의대들이 서울과 경기권의 협력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2월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서울 소재 의대는 증원하지 않았다. 증원분의 82%가 서울 및 경인 지역 밖 비수도권 소재 의대에 배정됐다. 하지만 사립의대 증원분 1194명 중 수도권에 병원을 둔 의대가 확보한 증원분은 771명에 달했다. 비수도권 의대에 배정된 증원분 64.5%가 무늬만 지방의대에 돌아갔다는 의미다.
전 국장은 “정부가 지방 사립의대의 편법운영을 바로잡지 않은 채 의대 정원을 몰아줬다”라며 “지방 사립의대가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라는 설립 취지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런 증원은 취소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나백주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수도권에 미인가 학습장을 둔 지방사립의대들이 지방 의료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의대가 대표적인 편법운영 사례로 지적됐다. 지방의대로 인가받고도 서울아산병원을 중심으로 학사와 수련이 돌아가고 있어서다. 울산대는 홍보자료와 대학 홈페이지 등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시설을 캠퍼스로 소개하고 있으며, 2024년도 울산대 정시모집 당시에도 아산병원 교육연구관을 울산대 의과대학으로 표시했다.
나 교수는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지방에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해도, 실질적으로는 수도권에서 수련 받는 인원만 더 늘리는 것”이라며 “의대가 수도권 부속협력병원에서 이익을 창출하고 병원을 이른바 ‘빅5’처럼 대형화하는 데 집중할수록 지방에서는 교육과 의료의 질이 하락한다”라고 비판했다.
정책 결정자들도 이런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울산은 대도시이면서도 공공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이다. 그간 울산공공의료원 설립이 추진됐지만, 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탈락해 건립사업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울산광역시 동구를 지역구로 둔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구는 소아·청소년과 병원 2곳뿐이며 입원을 못 해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라며 “울산의대가 30년 이상 의대 교육을 진행한 서울아산병원에는 기초교원은 110명, 대학원생은 730명이 상주하고 있지만, 정작 울산 동구의 울산대병원에는 대학원생이 30명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방의대가 지역의 의사를 오히려 서울로 유출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의원은 “울산의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지원할 때부터 본인들이 울산에서 수련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울산의대를 졸업한 의사 중 울산에서 활동하는 의사가 약 7%에 불과하다는 집계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립의대의 편법운영을 제재할 강제력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청이 나온다. 나 교수는 “의대인증 기준을 지키지 않은 의대에 대해서는 대학 허가를 반납하도록 강제해야 하며, 인증평가 기준 미달 교육에 대해서는 학점 인정을 취소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