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51.고전중인 독일 폴크스바겐, 獨 경제의 현주소

입력 2024-11-06 17:37 수정 2024-11-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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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강펀치 맞은 유럽 최대 자동차사
노사협상 결과에 독일 경제 달렸다

속도제한이 없는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과 폴크스바겐(Volkswagen, VW)은 동전의 양면이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일자리와 빵을 약속하며 1933년 1월 집권했다. 당시 독일 경제를 휩쓸고 있던 대공황을 극복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 그 해 9월 말 프랑크푸르트 인근에서 아우토반 공사가 시작됐다. 이어 노동자들이 이 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승용차로 개발한 것이 VW다.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하다며 우생학적인 혈통을 우선한 독재자는 연설 때마다 항상 민족(폴크)을 강조했다. 아리안 민족이 타는 자동차가 바로 폴크스바겐이다. 나치당 산하의 독일노동전선이 자동차사를 설립했다. 1937년 5월 28일 공장 착공식에 참석한 히틀러는 “이 차가 (나치) 민족공동체의 상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했던 중동부 유럽에서 2 만여 명을 강제노역시킨 치욕의 역사를 극복하고 VW는 유럽 최대의 자동차사가 됐다. 그런데 87년이 된 폴크스바겐사가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생산단가가 급등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 전환에 뒤처짐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노조와 해법 마련을 협상중이지만 쉽지 않을 듯 하다. 독일 경제에서 폴크스바겐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해법마련이 경제의 진로를 보여줄 수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 밀려 ‘흔들’

폴크스바겐은 지난달 30일 3분기 순이익이 15억 7천만 유로, 약 2조 3천 500억 여원이라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64% 감소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며 VW 매출의 절반 정도가 발생한 중국에서의 매출액이 올 해 9월까지 12%나 줄어들었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1% 정도만 감소했다. 유럽 내 자동차 수요는 아직도 코로나19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금리가 올라 수요 자체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VW의 중국 내 매출 감소는 일시적인 게 아니라 2020년부터 지속된 구조적인 문제다. 2020년 폴크스바겐을 비롯해 아우디 등 외국산 자동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64%를 차지했다. 그러나 작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40%로 23%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1월부터 8개월 간 3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급등했던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아가지만 폴크스바겐의 구조적 어려움은 누적돼 왔다. 무엇보다도 ‘메이드 인 차이나’의 도전이 매섭다. 중국의 BYD가 중국에서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을 급속하게 확대해왔다. BYD는 독일 내 렌트 시장에서 기업고객들이 즐겨 찾는 차가 됐을 정도로 유럽 시장도 꾸준하게 개척해 왔다. 내연기관차에 취한 독일 자동차회사들이 전기차 전환에서 중국에 견줘 크게 뒤처졌다.

중국의 BYD와 BIO 등 전기차 업체들은 유럽산 자동차사가 제조한 비슷한 수준의 전기차보다 가격이 20% 정도 싸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았고 중국산 배터리 사용, 값싼 인건비 때문에 제품 및 가격 경쟁력에서 유럽산 전기차를 압도한다. 2019년 중국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채 1%도 안됐으나 지난해 8%를 넘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날린 강펀치가 메이드 인 저머니의 자동차를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독일은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8% 정도다. 제조업 가운데 자동차 산업은 1/4을 차지한다. 직접 고용만 해도 80만 명 정도가 되고 협력업체 등을 포함하면 최소 200만 명이 자동차 산업에서 일한다. 전체 노동력의 7%가 자동차 분야에서 근무한다. 자동차 산업의 경기가 독일 경제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지난달 30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폴크스바겐 발전소 근처에서 한 사람이 짐을 나르고 있다. 볼프스부르크(독일)/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폴크스바겐 발전소 근처에서 한 사람이 짐을 나르고 있다. 볼프스부르크(독일)/로이터연합뉴스

폴크스바겐 노사협상 극과 극

폴크스바겐은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독일 내 10개 공장 가운데 3개를 폐쇄하고 10% 임금 삭감과 다른 비용절감 조치를 발표했다. 또 원래 2029년까지 약속한 고용보장을 내년 7월에 폐지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87년 역사에서 최초의 국내 공장 폐쇄 발표다. 사측의 안대로라면 최소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다. 노조는 지난달 30일 시작한 2차 노사협상에서 7%의 임금인상과 고용보장을 촉구했다. 노조는 사측의 요구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파업을 경고했다.

독일 정부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대의 자동차사에서 노동자 해고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VW의 제2대 주주는 볼프스부르크 공장이 위치한 니더작센 주정부로 20% 지분을 보유한다. 기업의 경영을 감독하는 경영감독위원회에 노동자 대표 및 주정부 대표를 합하면 과반이 된다. 즉 사측의 요구를 노동자와 주정부 대표가 힘을 합하면 거부할 수 있다. 주 정부는 회사의 요구가 공개되지 마자 “일자리 보호가 우리의 임무다”라고 밝혔다. 노조가 주요지지 세력을 구성하는 여당 사회민주당 정부도 경기침체에다 내년 9월 말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감원을 용인할 수 없다.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큰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을 왜 노동자에게 전가하냐며 포문을 열었다. 그 역시 일자리 보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쟁력 회복해야 獨 미래 보여

전문가들은 노조와 정부 대 사측의 역학관계를 감안하면 3개 공장 폐쇄대신 1-2개 정도 공장 문을 닫고 감원도 최소한에 그칠 것으로 본다.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결과는 회사의 구조적인 어려움을 조금 덜 뿐이다.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자동차가 불공정한 보조금을 받았다며 지난달 30일부터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유럽산 치즈 등 유제품이 과도한 보조금을 받았다며 반덤핑 조사로 맞대응했다. EU의 관세 부과는 중국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조금 낮출 수 있을 뿐이다. 단기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독일의 경제회복도 쉽지 않다. 폴크스바겐의 노사협상 결과는 독일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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