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선 '역주행'이 대세?…윤수일 '아파트'→키오프 '이글루'까지 [이슈크래커]

입력 2024-11-0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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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예나(왼쪽부터), 데이식스 영케이, 키스 오브 라이프 하늘. (출처=유튜브 채널 'MBCkpop', 'DAY6', 'GENIE MUSIC')
▲가수 최예나(왼쪽부터), 데이식스 영케이, 키스 오브 라이프 하늘. (출처=유튜브 채널 'MBCkpop', 'DAY6', 'GENIE MUSIC')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찾아오면서 연말 가요 시상식에도 시선이 쏠립니다.

다만 올해 K팝 시장은 '수치' 면에선 다소 아쉽습니다. 음반 판매량 '1억 장 시대'를 열면서 최고의 성적을 써냈던 지난해 대비 음반 판매량이 주춤했는데요. 발매 후 첫 일주일간의 음반 판매량을 말하는 '초동'도 줄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K팝은 나날이 저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는 팀 멤버들은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개인 활동을 펼치면서 자신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고요. 세븐틴은 북미 투어 '세븐틴 라이트 히어 월드 투어'(SEVENTEEN 'RIGHT HERE' WORLD TOUR)를 매진시키면서 데뷔 10년 차의 인기를 과시했죠. 데뷔 6년 차의 에이티즈는 4월 K팝 보이그룹 최초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서 폭발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며 해외는 물론 국내 대중에게도 존재감을 각인했는데요. 여기에 베이비몬스터, 투어스 등 새롭게 데뷔한 신인 그룹들도 흥행을 거두면서 눈도장을 성공적으로 찍었습니다. 이들은 각종 음원 스트리밍 차트 상위권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팬덤과 함께 대중성까지 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음원 차트에선 올해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역주행'인데요. 통상 음원은 발매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가 시들해지는데, 거꾸로 서서히 인기가 높아지는 흐름을 역주행이라고 부릅니다. 발매 당시 별 반응이 없던 노래가 수 주 뒤 인기를 끌며 차트인하거나 무려 40여 년 전 발매된 노래가 돌연 등장해 눈길을 끌었죠.

▲그룹 피프티피프티. (사진제공=어트랙트)
▲그룹 피프티피프티. (사진제공=어트랙트)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키오프 '이글루'…역주행 배경은?

'역주행' 하면 밴드 데이식스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올해 가요계는 '밴드의 재조명'으로 설명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밴드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씨엔블루, 루시 등 숱한 밴드가 떠오르지만, 그 중심에는 데이식스가 있죠.

데이식스는 JYP엔터테인먼트의 1호 K팝 밴드입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에 접어든 데다가 군백기(군대+공백기)까지 겪었지만, 본격적인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데요. 음원 차트를 점령한 건 물론 각종 음악 방송과 페스티벌 등에 출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데이식스는 9월 2일 발매한 미니 앨범 '밴드 에이드'(Band Aid)의 타이틀곡 '녹아내려요'로 멜론 톱100은 물론 지니, 벅스 등 국내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요. 데이식스가 음원 차트 1위를 휩쓴 건 데뷔 이래 처음이었죠.

'녹아내려요' 1위 행진을 마무리한 주인공은 다음 아닌 '해피'(HAPPY)였습니다. 3월 발매된 데이식스의 '해피'는 무려 6개월여가 지난 최근 입소문을 타고 차트를 역주행, 1위 배턴을 이어받았고 9월 멜론 월간 차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현재까지도 멜론 톱100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7일 오후 4시 기준 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함께 발매된 '웰컴 투 더 쇼'(Welcome to the Show)는 8위를, 2019년 7월 발매된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11위에 올라 놀라움을 자아냈죠. 2017년 2월 발매된 '예뻤어'는 15위를 기록했습니다.

기존 멤버들의 전속계약 분쟁과 이탈로 내홍을 겪었던 그룹 피프티피프티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9월 발매한 미니 2집 '러브 튠'(Love Tune)의 타이틀곡 'SOS'에 이어 수록곡 '그래비티'(GRAVITY)까지 히트시킨 건데요. 특히 '그래피티'는 뮤직비디오도 없이 오디오 영상만으로 유튜브 내 '인기 급상승 동영상' 음악 부문 차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에 소속사 어트랙트 측은 스페셜 영상을 별도로 제작해 지난달 31일 업로드했고, 이 영상은 공개 일주일여 만에 800만 회에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했죠.

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이하 키오프)도 심상찮은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키오프는 지난달 15일 미니 3집 '루즈 유어셀프'(Lose Yourself)를 발매, 약 9만1000장의 초동을 기록하면서 전작 '마이더스 터치'(Midas Touch)'보다 약 2만2000장 이상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는데요. 데뷔 앨범과 비교하면 18배 이상의 성장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발매로부터 약 4주가 지난 지금 대중의 눈과 귀를 홀린 노래는 타이틀곡 '겟 라우드'(Get Loud)가 아닌 수록곡 '이글루'(Igloo)입니다. '겟 라우드'가 더기 스타일의 힙합 리듬과 라틴풍의 멜로디에 멤버들의 묵직하면서도 개성 가득한 보컬, 랩이 더해진 곡이라면 '이글루'는 절제미 있는 래핑, 몽환적인 보컬이 돋보는 '칠'(Chill)한 힙합곡입니다. 발매 당일에도 반응을 얻었지만, 최근 인기에 비하면 소소한 정도였죠. 멜론 일간 1000위 차트에서 850위를 찍고 다음 날 바로 차트아웃 됐습니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챌린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멜론 일간 차트에 재진입, 701위로 순위도 끌어올렸는데요. 마지막 한 방은 음악 방송이었습니다. MBC M 음악 프로그램 '쇼! 챔피언'에서 방송 최초로 '이글루' 무대를 선보인 영상이 유튜브 조회 수 10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면서 열풍을 불렀습니다. 특히 중독적이고 위트 있는 안무, 멤버들의 무대 소화력이 눈길을 끌었죠.

소속사 S2엔터테인먼트도 곧바로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의 반응이 오자마자 활동 방향을 '겟 라우드'에서 '이글루'로 바꿔 잡은 건데요. 이에 힘입어 '이글루'는 멜론 톱100까지 진입했습니다.

▲(출처=유튜브 채널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출처=유튜브 채널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노벨문학상 수상자 언급에, 동명의 인기곡에…40년 전 노래도 '재건축'

해당 곡들의 뒤늦은 인기에는 입소문이 주효했습니다. 빠르게 정보가 확산하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각종 무대와 챌린지 등이 화제가 됐고, 이 관심이 음원 성적으로도 이어진 건데요. 이와 달리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아 돌연 음원 차트에 등장한 곡들도 다수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매 듀오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입니다. 2019년 9월 발매된 이 노래는 정규 3집 '항해'의 타이틀곡입니다. '항해'는 탄탄한 완성도, 서정적인 분위기로 사랑받으면서 당시 국내 주요 음원 차트 최정상을 '올킬'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1년이 지나서도 멜론 일간 차트에서 10위권을 유지하며 '롱런'했죠.

이 노래는 최근 다시 음원 차트를 거꾸로 달리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애초 '명곡 중 명곡'으로 잘 알려진 노래였지만, 한국인 최초, 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과거 에피소드가 알려지면서 재조명받은 겁니다.

한강은 2021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후 출판사 문학동네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곁에 있어준 노래'들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한강은 "평소에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라며 "글을 쓸 때 음악을 듣는 방식은 그때그때 다른데, 조용히 다듬기도 하고, 귀가 떨어질 것처럼 음악을 크게 틀어 잡념을 사라지게도 한다"고 말했는데요. 이때 언급한 곡이 악뮤의 노래였습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 초고를 다 쓰고서 택시를 탔는데 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며 "아는 노래고 유명한 노래지, 하고 듣는데 마지막 부분 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죠. 특히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라는 가사가 와닿았다고 합니다. 그는 "바다가 다 마르는 건 불가능한데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며 “갑자기 사연 있는 사람처럼 택시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던 기억이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지난달 10일 일간 차트에서 전일 대비 5단계 높은 34위에 올랐는데요. 이어 11일 자 차트에서는 순위를 7계단 끌어올려 27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달 6일 일간 차트에선 11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청중의 이목을 끌었죠.

그런가 하면 동명의 인기곡으로 수혜를 입은 노래도 있습니다.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컬래버레이션 한 듀엣곡 '아파트'(APT.)가 세계를 중독에 빠트리면서 42년 전 발매된 가수 윤수일의 '아파트'까지 역주행한 겁니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지난달 26일 멜론 일간 차트 756위에 올랐고, 지니 뮤직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가 하면 일일 스트리밍 횟수가 전주 대비 약 190% 증가했는데요. KBS 유튜브 채널 '어게인 가요 톱 10'에 올라온 '아파트 댓글모음' 영상 또한 화제를 모았는데, 공개 이틀 만에 10만 회 이상 재생됐습니다. 네티즌들은 해당 영상에 "로제 노래 듣다가 왔다", "42년 만에 재건축 성공한 아파트네", "은마아파트보다 재건축이 빨랐다", "1982년 수일 주공 아파트가 2024년 로제마스 포레온으로 재탄생했다", "우리의 '아파트'는 바로 이 노래" 등 재치 넘치는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윤수일 역시 이 현상에 반가움을 표했는데요. 윤수일은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그동안 저라는 가수 이름은 모르고 '아파트'라는 노래만 기억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얼굴이 많이 알려져 새삼스럽다"며 반겼습니다.

윤수일은 로제의 'APT.'에 대해서도 "한 번 들었는데도 바로 흥얼거리게 되더라. 중독성이 굉장한 노래"라며 "내 '아파트'는 떼창하기 좋은 내수용이라면, 로제 양의 'APT.'는 범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각기 개성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죠.

특히 윤수일은 "요즘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가 '나는 참 운이 좋은 가수'라고 하고 다닌다"며 "이렇게 40년 후에도 곡이 재조명되는 일은 참 드문데 하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가수 우즈. (출처=유튜브 채널 'KBS 레전드 케이팝')
▲가수 우즈. (출처=유튜브 채널 'KBS 레전드 케이팝')

수록곡, 타이틀 못지않은 인기…"역주행은 건강한 흐름이기도"

이 밖에도 가수 우즈의 자작곡 '드라우닝'(Drowning), (여자)아이들의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최예나의 '네모네모' 등이 역주행 기록을 썼는데요.

주목할 점은 역주행을 기록한 노래 중 적지 않은 곡이 '수록곡'이라는 겁니다. 통상 수록곡은 타이틀곡과 비교했을 때 '차트 상위권에 들기 어렵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많은 수록곡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면서 매력을 뽐냈습니다. 특히 대중성과도 직결되는 인기 차트를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은 소속사 차원의 바이럴 등 영향도 받았겠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를 입증하는데요. 타이틀곡 외 수록곡까지 거를 곡 없는 타선을 갖추며 앨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로도 통할 듯합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 연예 매체를 통해 "역주행은 미발굴된 콘텐츠를 발굴한다는 것, 대중들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 공감대를 통해 기존의 차트를 헤집고 들어가는 형태는 매우 건강한 흐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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