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입력 2024-11-11 06:02 수정 2024-11-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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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힘찬병원 5주년, ‘환자 중심 관점’ 전파 [해외서 주목받는 K메디컬]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전경. (한성주 기자 hsj@)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전경. (한성주 기자 hsj@)

‘최초의 자가발전기(UPS), 최초의 전자의무기록(EMR), 최초의 물리치료실’

한국 병원에서는 당연한 구성요소들이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의 수식어를 달고 병원가에 파장을 일으킨다. 올해로 개원 5주년을 맞은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의 이야기다. 한국 병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옮겨 왔으며, 현지 의료진에게는 낯선 ‘환자 중심 치료’를 정립했다. 부하라 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전역에서 환자들이 찾아온다.

본지는 7일(현지시간) 부하라 힘찬병원을 찾아 한국식 병원 시스템(K메디컬)의 해외 이식 성과를 살펴봤다. 부하라 힘찬병원은 현지에서 최신 술기를 도입하는 창구이자,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민간외교관’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부하라 힘찬병원, 현지 의료시스템 혁신 모델

한국에서 국제선 7시간, 국내선 2시간 비행 끝에 도착할 수 있는 부하라 힘찬병원은 도심 속 가장 번화한 삼거리 한가운데 자리했다. 건물 전면에 우즈베키스탄과 한국 국기를 내걸었다. 이 병원은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한 약 3000평 규모의 학교 건물과 부지에 2019년 11월 건립됐다. 신경외과, 정형외과, 내과 등 의사 11명을 비롯해 총 91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1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이다.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입원병동에 한국에서 들여온 전동침대가 설치돼 있다. (한성주 기자 hsj@)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입원병동에 한국에서 들여온 전동침대가 설치돼 있다. (한성주 기자 hsj@)

개원 후 5년간 부하라 힘찬병원은 현지 병원들이 추종하는 청사진이 됐다. 전에 없던 시스템을 선보이며 기존 병원들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현지 병원에는 없던 환자복과 환자식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병동에는 전동 침상이 마련돼 있고, 커튼으로 개인 공간을 구분한다. 병원 곳곳에서 손 소독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수술 환자를 기다리는 보호자들의 대기 공간도 별도로 만들었다. 한국 병원에서는 새삼스럽지 않은 모습이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모두 생경한 풍경이다.

힘찬병원에 따르면 부하라 힘찬병원 인근의 몇몇 의료기관들이 최근 환자식 제공을 시작했다.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5년 전 처음 방문했던 한 병원은 중환자실조차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확인하는 모니터가 없을 정도였다”라며 “현재도 우즈베키스탄 병원 대부분은 환자복이 없고, 환자식이라는 개념이 없어 환자들이 스스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병원을 건립하면서 최대한 한국 병원과 똑같은 환경을 구현하려 했고, 전동침상과 여러 의료장비들을 한국에서 사용하는 제품 그대로 공수해 들여왔다”라고 강조했다.

원격진료실 등 우즈베크에 K메디컬 이식

한국에서는 보편화했지만, 우즈베키스탄에는 없는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1층 로비의 ‘원격진료실’이 대표적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국토가 한반도의 두 배 이상으로 넓지만, 병원 접근성은 떨어져 원격진료가 중요한 수단이다.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원내 소독실도 가동 중이다. 한국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독기를 들여와 각종 집기를 살균 처리한다. 소독실이 없는 인근 병원들이 소독실 사용을 요청하고 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모두에게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소독실에서 한국에서 지원을 나온 의료진이 소독기구를 소개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소독실에서 한국에서 지원을 나온 의료진이 소독기구를 소개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고한승 목동힘찬병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은 “올해만 두 번째 현지에 방문해 진료와 시술, 수술을 진행했다”라며 “아직은 환자들이 현지 의사보다 한국 의사를 신뢰하는 경향이 강해, 올 때마다 하루에 50명 내외의 외래 환자를 보고 수술 역시 6건 이상 진행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현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어, 수술이나 시술은 한국에서 원격으로 미리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진행 계획을 마련하면서 완벽함을 도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정전전원장치(UPS)와 전자의무기록(EMR)도 부하라 힘찬병원 건립 이전까지는 현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진이 잦고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지만, UPS가 보편화하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현지 병원이 모든 의무기록을 종이에 수기로 관리해 혼동과 소실 위험이 크다.

힘찬병원 의료진은 의사의 자기만족이 아닌, 환자의 만족을 기하는 ‘환자 중심’ 사고방식도 교육한다. 새로운 술기와 치료 방식을 현지 의료진에게 지속해서 훈련시키는 중이다. 신경성형술과 블록주사요법 등 비수술적 치료법이 대표적이다. 신경성형술은 환자의 꼬리뼈 부위로 초소형 ‘라쯔 카테터’를 삽입해 약물을 주입하는 시술이다. 블록주사요법은 초소형 바늘로 신경을 차단해 통증을 완화하는 시술이다.

신경성형술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부하라 힘찬병원이 처음으로 시행했다. 부하라 힘찬병원이 한국 라쯔 카테터 수입을 추진해 한국 병원의 시술 수준을 재현했다. 블록주사요법은 현지 의료기관에서도 시행하고 있었지만, 재료의 한계로 통증이 극심해 환자들이 꺼리는 시술이었다. 이에 한국에서 사용하는 제품만큼 가느다란 주삿바늘을 공수해 시술 통증을 최소화했다.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1층 물리치료실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1층 물리치료실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박승준 샤르자대학병원 힘찬관절척추센터장(정형외과 전문의)은 “현지 병원에서는 의료진의 편의에 따라 진료와 수술을 진행하는 경향이 다분히 느껴져 한국에서 기본 원칙으로 여겨지는 ‘환자 중심’ 사고방식을 현지 의료진에게 확립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라며 “현지 의사들을 1대1로 지도하면서 환자의 심리적 신체적 고통과 치료 이후 삶 전반을 깊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원내 물리치료실도 부하라 힘찬병원의 자랑거리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물리치료사 양성 과정이 없고, 직업고등학교 졸업생이 전기 치료나 마사지를 한다. 이에 부하라 힘찬병원은 재활치료와 해부학적 전문성을 갖춘 물리치료실을 현지에서 최초로 열었다. 물리치료기구는 한국에서 직접 공수했다.

힘찬병원, 한국 문화 전달…‘민간외교’ 첨병

한국 문화를 전달하는 민간외교 활동도 눈에 띄었다. 병원 구내식당은 부하라 지역 ‘한식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직장인들이 한식을 맛보기 위해 부하라 병원 직원식당으로 몰려들었다. 구내식당 내에는 ‘국시’, ‘김치볶음밥’, ‘라면’ 등 각종 한식 먹거리가 한국어와 함께 붙어 있다.

임직원 한국어 말하기 대회도 개최했다. 한국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병원 구성원들의 수요를 고려해 마련한 행사다. 이번 1회 대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참가자에게는 한국 연수의 기회가 주어졌다. 앞으로는 연수를 비롯해 한국어 교육 지원 포상도 제공하며 임직원의 학습 의지를 고취할 계획이다.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에서 제1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라흐마노바 딜푸자씨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7일(현지시간)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에서 제1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라흐마노바 딜푸자씨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투자 성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이 힘찬병원 측 설명이다. 부하라 힘찬병원 건립은 2017년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장관의 요청으로 추진이 시작됐다. 애초 투자비용으로 50억 원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제공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만 100억 원이 넘게 들었다.

각종 간접비를 포함하면, 민간 의료재단이 수백억을 투입해 해외에 한국 병원 시스템을 이식한 셈이다. 수익성을 따졌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초대형 프로젝트다.

박혜영 상원의료재단 힘찬병원 이사장(내과 전문의)은 “사람을 살리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현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과 직원들의 배움 의지를 생각하면 보람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66년 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한국에 자본과 의료진을 보내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NMC)을 선물한 것처럼, 이제는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의료가 필요한 곳에 K-병원을 전달할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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