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교육·봉사·의료기기 수입까지 만능 기관 거듭나
“도저히 환자를 살릴 수 없는 중환자실이었습니다.”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처음 우즈베키스탄 현지 병원 내 중환자실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공호흡기와 모니터가 없고, 제각각 일상복을 입은 환자들이 어지럽게 침상과 의자에 누워있었다. 1970년대 한국의 의료현장보다도 열악한 모습이었다.
충분히 치료 가능한 환자도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는 모습이 이 원장의 뇌리에 박혔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일념으로 현지에 한국식 병원 건립을 다짐했고, 박혜영 상원의료재단 이사장(내과 전문의)과 의기투합해 ‘맨땅에 헤딩’하듯 100병상 규모의 부하라 힘찬병원을 건립했다.
본지는 7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힘찬병원 집무실에서 이 대표원장과 박 이사장 부부를 만나 부하라 힘찬병원 개원 5주년 소회를 들었다. 이들은 2017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요청으로 부하라에 3000평(약 9917㎡) 규모의 학교 부지에 한국식 종합병원을 세웠다. 종합병원인 부하라 힘찬병원은 시설과 의료장비는 물론, 운영 체계도 한국 병원을 최대한 재현했다.
낯선 타국에 병원을 여는 것은 고난도 다차방정식이었다. 구소련 공산주의 시스템의 영향으로 우즈베키스탄은 진료비가 무료이며, 대부분 검사나 의약품 비용도 극히 저가로 책정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비조차 3만 원 수준이다. 대가 없이 제공되는 기초적인 진료에 익숙한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치료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이 대표원장은 “무상 의료 체계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노력하도록 고취하기 어렵다”라며 “환자들도 본인이 왜 추가 비용을 내며 치료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통증이 극심해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정도가 아니라면 조기에 병원에 찾아오지 않고 병을 키우는 이들도 많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의료진의 교육 수준도 한국과 격차가 컸다. 우즈베키스탄은 국가보건의료면허 제도가 없어 대학 총장이 의과대 졸업생에게 의사 자격증을 주며, 간호사들은 직업고등학교 졸업생이다. 전문의 수련 과정이 미비하며, 대부분의 의사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 2~3개의 파트타임 근무를 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현지 의사들의 역량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부족해, 한국에서 파견된 힘찬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1대 1로 붙어 술기를 지도해야 했고, 환자를 진료하고 응대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을 세세하게 가르쳐줘야 했다”라며 “그러면서도 이들이 의료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지시로 느껴지지 않도록 소통하느라 애썼다”라고 말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들여오는 작업도 순탄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은 의약품 당국 간 협약이 체결돼 있어, 한국에서 승인된 제품은 원칙적으로 1개월 내에 신속히 도입할 수 있다. 문제는 의약품 당국과 관세청의 행정 처리가 느리고, 원칙이 지켜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게다가 해외에서 의료기기나 수술 재료를 들여올 때마다 ‘등록비’ 명목으로 큰 비용이 청구되기도 한다.
이 대표원장은 “카테터나 주삿바늘을 들여오기 위해 한국 직원들이 우즈베키스탄의 의료기기 수입 절차와 관련 법률을 찾아 현지 정부와 소통했다”라며 “지난한 노력 끝에 한국 병원들이 사용하는 라쯔 카테터와 얇은 주삿바늘을 확보해, 현지에서 최초로 라쯔 신경성형술과 통증을 최소화한 블록주사요법 등 비수술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발생하면서 병원 운영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사회공헌 사업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을 짓는다는 건립 취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개원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고 있으며, 한국으로 환자를 보내 수술하기도 한다”라며 “코로나19 환자가 한참 증가했던 시기에는 병원 밖으로 무료 진료 봉사를 다니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 대표원장과 박 이사장의 진심을 알아준 현지인들의 도움이 병원의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도움바르노예브 우크탐 이사예비츠 전 부하라 주지사 내외는 부하라 힘찬병원 건립 초기부터 각종 제도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이 대표원장 내외와 각별한 우정을 쌓았다.
박 이사장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수 차례 오가면서 단지 일이나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부하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원장과 박 이사장의 최종 목표는 부하라 힘찬병원의 자립이다. 현재는 한국에서 의료진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진료, 수술, 시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현지 의사들보다 한국 의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한국에서 의료진이 방문한 시기에 환자가 몰리기도 한다. 한국 의료진의 도움 없이도 한국식 병원의 모습과 의료 질을 유지하도록 술기와 시스템을 완벽히 숙달시킨다는 목표다.
박 이사장은 “부하라 힘찬병원이 개원 5주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기반을 다지고 있다”라면서도 “여전히 과제들이 많이 쌓여있다”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원장은 “5년 동안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현지 의료현장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명확히 파악했다는 점이 희망적”이라며 “이제부터는 문제를 차근차근 돌파해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