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에도 전쟁은 자주 발생
‘분쟁 종식’ 호언 트럼프에 기대
역사를 읽다 보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획기적인 사건들이 하루아침에 아니면 짧은 기간에 일어난 것처럼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일어난 진화는 없었으며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나날이 지나면서 일어난 변화가 지금의 지구사회를 형성한 것이다. 문명의 발생도 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나 인더스, 황하와 나일강의 문명이 서서히 형성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인류사회를 변화시킨 것도 그와 같이 지구한 일월의 조화였음에 틀림없다.
인류가 처음 영위한 경제생활이 수렵 채취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수렵 채취 시대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로웠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인 것 같다. 그와 같은 주장의 핵심에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그의 명제는 그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소박한 자기보존 욕구와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가진 존재로 순수했다. 그러나 사회가 형성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존은 쉬워진 반면에 인성은 점차 타락했다.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경쟁이 심화하고 그 결과 이기심이 자극되어 인성은 더 이상 순수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사회를 버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두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하여 상호존중을 배우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연은 순수했으며 평화로웠는데 문명의 발생으로 모든 갈등과 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루소 류 자연주의의 핵심이다.
그와 같은 주장 가운데 널리 인용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1901-1978) 여사의 ‘전쟁은 단지 발명된 것일 뿐,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이 아니다(Warfare is Only an Invention - Not a Biological Necessity)’이다. 1940년 발표한 그녀의 논문 제목인 이 구절은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 평화로웠던 인간 생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인 전쟁이 수렵채취시대의 자연적인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희귀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 인류학, 화석학 등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오래 전의 사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전쟁은 빈번했으며 때로는 매우 난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원시시대부터 전쟁은 분쟁 해결의 손쉬운 수단으로 인식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전쟁의 교과서에 따르면 그 시대의 분쟁은 식량과 성적인 욕구가 주된 원인이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인 과제가 살아남아야 하는 것과 종족의 번식이니 원시시대이건 현대이건 차이가 클 것 같지는 않다.
그와 같이 설명하고 있는 전쟁 서적을 읽으면서 현대에도 원시적인 욕구가 전쟁의 원인일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형적인 경우라고 생각되지만 그보다는 야심가들의 돌출 행동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평화로운 모임에서 하루아침에 1,200명을 죽이고 200여 명을 인질로 끌고 가는 공격을 당했을 때 최적인 대응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시작하기는 쉬울지 모르나 끝내기는 지난한 것이 전쟁이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호해진다. 단번에 끝내리라고 시작한 전쟁이 몇 년씩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럽에서 벌어진 100년 전쟁, 30년 전쟁, 8년 전쟁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지난 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이 그랬고 6.25전쟁 또한 그랬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 주변에 불안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세계의 분쟁을 하루아침에 끝낼 수 있다고 호언하는 트럼프 씨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