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물병원에서 동물진료 목적으로 구매해 사용한 인체용 전문의약품의 판매 내역 파악과 오남용 예방을 위해 정부가 체계적인 관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현행법상 동물병원 개설자는 약국 개설자로부터 동물을 진료할 목적으로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이 경우 약국 개설자는 의약품을 판매한 동물병원의 명칭, 판매한 의약품의 명칭, 수량 및 판매일 등을 의약품 관리대장에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개별 약국에서 작성하는 기록은 단순 수불대장에 불과해 전문의약품 관리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수의사가 동물병원 내 진료실을 갖추지 않고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인체용 의약품을 판매한 행위에 대해 약사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 대한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례는 동물병원에서의 인체용 의약품은 수의사가 동물의 직접 진료나 검안을 통한 사용만이 가능하며 판매할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약사회는 “인체용 의약품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전문가의 철저한 관리와 절차 아래 사용돼야 한다”며 “동물병원에서 인체용 의약품을 동물 보호자에게 임의 판매하는 행위는 국민 보건과 동물의료체계 모두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이러한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률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체용 의약품의 반려동물 사용 과정에서 오남용과 부실한 관리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국회에도 관련 법이 제출됐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8월 약국 개설자가 동물병원 개설자에게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의약품관리종합센터에 판매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27일 국회 법제사헙위원회를 통과했다.
서 의원은 “약국 개설자가 동물병원 개설자에게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의약품 관리종합센터에 판매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명시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의약품 오남용 예방을 위한 의약품 유통관리체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 의원은 “인체용 전문의약품이 유통·판매되는 동물병원이 해마다 수천여 개를 초과하며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판매 약국과 구매 동물병원 소재지가 다른 사실을 제시하며 약사법이 금지하는 '의약품 배송'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이달 15일 서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에 수용 입장을 제출했다. 복지부는 동물병원에 판매된 인체용 의약품 유통현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동물병원 사용현황을 연계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약사회 모두 의약품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유통관리 체계 구축에 동의했다.
하지만 대한수의사회와 한국동물병원협회 측은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약국에서 동물병원으로 인체용 전문의약품 판매 자체를 거부할 우려가 있다. 동물병원에서 진료에 사용하는 인체용 의약품을 약국뿐만 아니라 도매상에서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동물진료기록부 공개 의무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15일 ‘빈려동물 진료 기록 열람 또는 사본 제공’을 ‘규제혁신 과제’에 포함시켰다. 정부는 진료기록부를 공개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사고 여부 확인, 보험금 청구 목적 등으로 범위를 제한할 계획이다.
대한약사회는 “수의사의 진료기록부 작성과 공개는 반려동물 보호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불필요한 약물 오남용을 방지해 동물 진료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장치가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반면 수의사들은 진료 기록부가 공개되면 무분별한 자가 진료와 약품 오남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 의사마다 진료 내용이 달라 진료기록부가 공개되면 지적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