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마워요”…버림받은 ‘통일미’, 아프리카서 화려한 부활 [해시태그]

입력 2024-11-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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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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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으로 살아간다는 한국인. 적당한 찰기, 반지르르한 기름, 씹는 맛이 일품인 쌀을 위해 ‘품질 좋은 쌀’을 찾기 위한 수고도 마다치 않죠. ‘밥맛없다’가 욕이 되는 한국인에게 ‘밥심’은 정말 중요한데요. 한때 한국인의 밥심을 책임졌던 쌀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식량난 해소’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보릿고개로 식량 사정이 나빴던 1960년대. 선택으로 하루에 한 끼 혹은 두 끼만 먹는 이들이 늘어난 요즘과 다르게 다들 ‘강제적으로’ 하루 3끼가 힘들었던 시절이죠. 가난한 나라였던 당시 한국은 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 자라는 쌀’을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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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인구에 맞춰 ‘많은 쌀’을 공급하기 위해 ‘잘 자라는 쌀’을 만들기 위한 노력 끝에 인디카종(장립종) 쌀과 자포니카종(단립종) 쌀을 교배해 통일벼라고 불리는 ‘통일미’가 1970년대에 개발됐는데요. 그 당시는 매우 획기적인 ‘벼’였습니다. 이후 오십원짜리 동전에도 이 ‘통일미’가 새겨졌죠.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원 아래 통일미는 1970년대 중반 전국 농가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요. 통일미로 바꾼 농가들의 생산량이 40%나 늘어나며 ‘식량난 해결’에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쌀밥’을 맛볼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귀한 존재’였죠.

하지만, 문제는 ‘밥맛’이었습니다. 영 우리네 입맛과 달랐기 때문이죠. 미질의 차이였는데요. 맛이 거의 인디카종(인도형)이었습니다. 길쭉한 모양의 장립형이며 찰기가 없습니다. 아밀로오스 함량 비율이 높아 끈적임 대신 푸석하고 딱딱한 식감을 주는데요. 밥알이 입안에서 따로 도는 느낌이 강하죠. 흔히들 동남아에서 쌀 음식을 시키면 나오는 그 쌀입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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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쌀은 자포니카종(일본형)인데요. 인디카종에 비해 쌀알 모양이 짧은 단립형입니다. 전분 성분인 아밀로오스 성분이 낮고 점성은 높아 우리가 좋아하는 윤기 자르르한 차진 쌀밥 맛을 느낄 수 있죠.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쌀입니다.

윤기 나고 차진 밥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통일벼’는 그저 배를 채우는 음식이 됐는데요. 오죽하면 “통일미보다 보리밥 맛이 더 좋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거기다 통일벼의 단점이 치명적이었는데요. 냉해에 약하다는 점입니다. 냉해가 겹치면 쌀 생산량이 급감했는데요. 1980년도에는 쌀 생산량이 무려 30%나 감소한 최악의 흉년이 들기도 했죠. 또 물못자리가 아닌 비닐 터널이 필요해 자재비가 더 드는 데다, 볏짚이 짧고 약해 가마니나 새끼줄을 꼴 수도 없어 점점 더 외면을 받았는데요.

질보다 양을 중시하며 달렸던 터라 생겨난 아쉬움이었습니다. 이후 쌀 생산량이 증가하고 국민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통일미, 통일벼는 자취를 감추게 됐습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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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이 통일미가 새로운 연관검색어와 부활했는데요. 바로 아프리카입니다. 2008년 한국 기업이 마다가스카르 130만 헥타르(1만3000㎢)의 대규모 농장을 국가로부터 99년간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한국이 식민주의적 발상으로 아프리카를 한국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2012년 포스코의 지원으로 통일미 지원사업에 나섰죠.

그런데 이게 큰 효과를 거둔 겁니다. 통일미의 단점인 냉해에 약하고 인디카종의 맛과 향이 난다는 것이었는데, 아프리카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거든요. 냉해 걱정이 없는 기후에다 오히려 그 인디카종을 더 선호했죠. 거기다 아프리카에서 재배됐던 고유종보다 생산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아직도 식량 부족과 싸우고 있는 아프리카로서는 통일미는 ‘빛’이었는데요. 이제 아예 ‘K 라이스벨트 사업’으로 나섰죠. 식량 위기 국가에 대한 장기적 지원 방법으로 한국의 벼 종자를 공급하고 쌀 재배 기술을 전수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현재 14개국으로 확장했는데요. 6월 마다가스카르, 말라위, 앙골라, 짐바브웨 등 4개국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합류했죠. 이들은 주식이 쌀이지만 자급률은 55%의 정도로 많은 물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자신의 땅에서 잘 자라고,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통일미와 정부 사업이라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죠.

올해 시범 사업에 돌입한 아프리카 6개국은 현지 품종과 농법보다 이 통일미를 활용한 한국의 농업법으로 2~4배 더 많은 수확량을 거뒀습니다. 통일미를 아프리카 현지에 맞게 개량한 이스리(ISRIZ)-6, ISRIZ-7 등의 종자와 농기계, 비료, 농약, 저장시설, 관개시설 등을 지원하고 관리인을 파견하여 농법도 가르쳤죠. 윤석열 대통령도 19일 G20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식량난에 10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한 만큼 한국의 지원 사업은 더 활발해질 전망인데요.


(뉴시스)
(뉴시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그 유일하고도 자랑스러운 타이틀의 하나가 된 ‘통일미’. 그야말로 화려한 부활이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 쌀’이 아프리카 식량 부족에 큰 도움으로 나선 사연의 주인공이 되었으니까요.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줬던 통일미가 이제는 아프리카 국민의 주린 배를 채워줄 ‘귀한 자원’이 됐죠.

우리나라에서는 단점이 타국에서는 장점으로 발휘된다는 점도, 또 이를 적절히 활용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까지 그 ‘알맞음’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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