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금리 하락기에 접어들었지만, 국내 비은행 금융기관의 외형 성장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회복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통화긴축 전환에도 선반영된 금리 수준을 감안할 때 추가 금리하락 폭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구조화평가본부 실장은 19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한국신용평가가 공동주최한 미디어브리핑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브릿지론에서 15% 내외의 추가 부실이 예상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신평에 따르면 전 금융권의 PF 익스포져 217조 원 중 구조조정 대상인 유의·부실 우려는 약 10%로 집계됐다. 상호금융(16조 원), 저축은행(7조8000억 원), 증권사(5조2000억 원), 여전사(3조5000억 원)가 대부분이었다.
양호·보통 브릿지론 전이 후 유의 이하 비율은 캐피탈사의 상승 폭이 16.1%p(포인트)로 가장 컸다. 캐피탈사의 유의 이하 비율은 19.6%에서 35.7%로 예상됐으며, 이어서 증권사(31.7%→44.9%), 저축은행(42.2%→54.0%)이었다.
위 실장은 "신용등급 하락 전 재구조화 및 매각 노력을 해야 한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브릿지론 손실 인식이 지속하고 하반기부터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이라며 "이제는 손실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장기적인 대응력이 중요하다. 구조조정의 관점은 부실채권 정리"라고 짚었다.
은행 산업의 부정적 산업전망은 내년에도 이어진다. 이주원 무디스 수석 연구원은 "한국 은행은 장기 평균을 밑도는 경제성장률, 취약차주의 건전성, 부동산 대출로 인한 자산리스크 상승 등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17개 국가의 은행 산업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 또는 '안정적' 신용전망을 부여했지만, 한국·중국·홍콩 3개국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이 총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도 은행을 비롯한 금융지주사들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고 봤다. 기존의 양적 성장은 완화하고, 비이자수익과 비은행 이익을 확대해 고수익 포트폴리오를 추구하는 질적 성장으로 전환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기업 신용등급은 내년에도 하향 우위가 심화할 것이라는 판단도 나왔다. 한신평에 의해 올해 3분기까지 신용등급 또는 전망이 조정된 기업들의 상하향배율은 0.5배를 기록했다. 2021년과 2022년 정점(1.1배)을 기록한 뒤 2023년(0.8배)까지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상하향배율이 1 이하일 경우 신용등급 하향이 상향보다 우위 기조라는 의미다.
올해도 신용등급 '부정적·하향'은 24곳, '긍정적·상향'은 5곳으로 당분간 하향 우위는 지속할 전망이다. 부정적 신용전망을 받은 곳 중에는 롯데그룹(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롯데지주, 롯데물산)과 SK그룹(SKC, SK어드밴스드)이 가장 많았다.
김용건 한국신용평가 상무는 "최근 미국과 한국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시작했지만, 트럼프의 출현, 미국 경제지표에 따라 인하 안착 시기는 변동이 있다"라며 "글로벌 경제와 달리 국내 경제는 수출 둔화, 소비 지연 등으로 예상보다 더딘 개선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업종별 수익성도 양극화를 보였다. 조선, 상영관 산업은 2년 연속 실적 개선세를 나타냈지만, 석유화학, 정유, 철강, 항공, 유통은 2년 연속 실적이 저하 중이다. 김 상무는 "석유화학, 이차전지, 철강, 정유 업종은 제품 마진 축소로 향후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한국의 전체 포트폴리오 중 '부정적' 신용전망 기업은 14%로 1년 전 4%였던 것에 비해 큰 폭 증가했다. 션황 무디스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는 화학, 배터리 산업이 약화하고, 재무구조가 흔들린 영향"이라며 "현재 업황이 좋지 않은 사업들의 수익성은 내년에도 개선되기 어렵다"고 짚었다.
올해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트럼프 재선에 따른 미국 정책의 불확실성이라고 지적했다. 션황 수석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칩스법 등 정책 변화, 시행 시점 등은 예상하기 어렵지만, 배터리, 자동차, 반도체 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향 수출 물량이 많은 한국 산업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한신평은 국내 그룹사 중에서는 롯데, SK그룹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의 80%가 유통(36%), 석유화학(29%), 건설(12%), 이차전지(2%) 등 비우호적 사업 전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SK그룹은 배터리, 인공지능(AI) 중심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무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김 상무는 "두 그룹 모두 향후 적정 수준에서 관리 가능하다고 보지만, 석유화학, 건설 산업의 어려움은 단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롯데그룹의 업황 대응 능력과 SK그룹의 계열사 합병, 그룹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