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유족, 사도광산 별도 추도식...'외교 실패' 논란 불가피[종합]

입력 2024-11-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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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한국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한국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도광산 강제징용자 추도식에 불참을 통보한 한국 정부와 유족이 25일 일본에서 별도의 추도 행사를 열었다. 한일 정부가 합의했던 사도광산 강제징용자 추도식이 각각 나뉘어 치러지는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면서 우리 정부는 '외교 참사'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일관계가 또다시 경색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조선인 노동자 추도 행사를 열었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해 한국 유족 9명 등 모두 30여 명이 참석했다. 추도식은 강제 노역한 조선인을 추모하는 추도사 낭독에 이어 묵념, 헌화 등으로 진행됐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며 "영영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의 한스러운 마음, 귀국 후 사고 후유증과 진폐증으로 힘든 삶을 이어간 분들에게 어떤 말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사는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추도식이 가혹한 환경에서 고통을 겪은 한국인 노동자를 기억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초 우리 정부는 한국 유족과 함께 전날 일본 정부 주최로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행사를 하루 앞둔 23일 불참을 통보한 뒤 이날 개별 추도식을 열엇다.

정부가 갑작스럽게 불참을 결정한 건 추도식에 일본 대표로 참석하는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의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때문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일본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강제동원 희생자를 추모하는 첫 추도식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참석하는 건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다 불명확한 행사 명칭과 추도사 내용에 대한 이견 역시 문제가 된 것으로 파악된다. 명확하지 않은 추도 대상, 조선인 노동자를 위로하고 사과하는 내용이 추도사에 담길지 여부도 공개되지 않았다.

실제 이쿠이나 정무관이 전날 일본 정부 추도식에서 발표한 추도사에선 조선인 노역의 강제성을 보여주는 표현은 누락됐다. 사과 역시 없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일본이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매년 추도식을 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첫 추도식부터 파열음을 내며 반쪽 행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야스쿠니 참배 이력을 가진 인사 파견과 사과 없는 추도 내용, 추도식 불참 등으로 첫 행사가 파행을 맞으면서 우리 정부는 외교 실패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일각에선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등 훈풍이 불었던 한일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처참한 외교로 사도광산 추도식이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 추모가 아니라 일본의 유네스코 등재 축하 행사로 전락했다"며 "1500여 명의 조선인 강제노동은 사라져버린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최악의 외교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독도도 역사도 위안부도 강제동원도 퍼주고 군사협력도 퍼주었다. 이런 저자세 퍼주기 외교 결과가 바로 사도광산 추도식 참사"라며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한국 정부의 굴욕외교가 계속되면 미래지향적이고 정상적인 한일관계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일 양국 간에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일본에 불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단 우리 정부의 원칙을 지킨 것"이라면서도 "한일 양국의 민감한 현안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와 같은 결과가 우리 외교 당국의 안일한 태도 때문 아니었는지 겸허한 반성과 점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윤 정부 출범 이후 모처럼 조성된 한일 우호 분위기 흔들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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