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한강’이 수상한 두 개의 노벨상

입력 2024-11-2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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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한국 경제의 기적 설파한 경제학상
문학상 수상으로 국민 자부심 높여
문화·경제 함께 아우르는 계기 되길

올가을 ‘한강’은 우리에게 두 개의 노벨상을 선물했다. 하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내 일처럼 기뻤다. 또 다른 하나는 한강의 기적,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이었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을 직접 받겠지만 한강의 기적은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MIT 교수 등 3명의 경제학자를 통해 수상하게 된다.

전경련 재직 시 해외에서 열린 ‘한국 경제 설명회’에 참석할 때면 현지 정부나 기업인들에게 항상 강조하던 얘기가 있었다. “우리는 제2의 일본(Second Japan)이 아니다.” 경제동물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당시 일본은 엄청난 무역흑자로 전 세계의 비난을 듣고 있었다. 세계 최고층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사들이자 미국의 혼이 팔렸다는 자조까지 일었다. 그래도 일본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자 신흥 개도국인 한국이 제2의 일본이라며 싹을 자르자는 경계까지 나오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독창적인 언어와 글자가 있는 문화민족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공허했다. 만약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한번 탔으면 이런 얘기를 구차하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래서 타고르 시인(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인도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일본이 몹시도 부러웠다. 게다가 우리에 경제적으로 뒤졌다고 느꼈던 중국마저 2012년 모옌(莫言)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보니 문화와 경제의 불균형은 우리의 숙명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좌절감까지 생겼다.

K팝과 K무비가 세계를 석권하는 듯해도 노벨문학상 없이는 마지막 퍼즐을 채우지 못한 허전함이 있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그래서 내 일처럼 기뻤다. 한국 문학의 세계성에 대한 인정뿐 아니라 경제발전의 가치가 단순한 물질적 부유함을 넘어 문화적 풍요로움까지 가져다줄 것이라는 개인적 믿음이 인정받았다는 기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필자가 대학생일 때 대학가는 온통 종속이론으로 뒤덮여 있었다. 경제가 성장했다지만 그 과실은 모두 외국 자본과 매판 재벌의 것이라고 했다.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종국에는 모래 위의 건물(沙上樓閣)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 수괴는 박정희, 그래서 분노하고 저항했다.

그러나 얼마 전 세계은행(WB)은 한국을 이른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벗어난 모범사례로 소개했다. ‘성장의 슈퍼스타’로 손꼽았다. 그리고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자들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두 한강의 기적을 예찬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한국 경제는 건강하게 성장했다”라고 했고 같은 대학 존슨 교수는 “가난했던 한국이 이뤄낸 업적이 놀랍다”라고 했다. 시카고대 로빈슨 교수도 “한국은 포용적 사회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뤘다”라고 했다. 로빈슨 교수는 특히 “한국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한 건 박정희 대통령 덕분이고 그때의 폭발적 발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그 후의 제도(민주화)였다”고도 했다.

그들에게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여조차 부인하면서 박정희를 매도하는 우리 내부 상황은 세계인의 합리적 판단과 엄청난 거리가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를 깎아내리고 서로를 손가락질할 동안 먼 나라 세계적 석학들은 한국의 굴곡진 역사를 연결의 관점에서 충실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민주공화제를 이룬 ‘한강의 기적’에 대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그러나 포용적 국가 한국은 지금 신음하고 있다. 부패한 정치, 취약한 법치, 불안한 사회에 더해 쇠퇴한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의 슈퍼스타에서 추락할 조짐까지 보인다. 이에 편승해 저급한 포퓰리즘이 판치고 있다. 제2의 일본은 언감생심, 제2의 중남미와 같은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노벨문학상으로 우리의 긍지를 높여 준 한강 작가는 수상자 발표 이후에도 기자회견을 사양했다. 전쟁에 시달리는 인류를 생각하면 축하받을 여유까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제안한 문학상 제정이나 기념관 신축 등을 모두 거절했다. 참으로 신선하다. 차제에 12월 10일로 예정된 수상식에서 ‘한강의 기적’을 짧게나마 언급해 줬으면 좋겠다. 포용적 제도의 힘으로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자신의 수상으로 문화가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비로소 꿈꿀 수 있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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