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태동기부터 토스 창업부터 성장까지 지켜봐”
“규제환경 선진화 기여…금융 발전 메기·초석 역할 하고파”
증권 유관기관인 한국거래소 이사장에서 핀테크기업의 싱크탱크 수장으로 변신한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메기 역할도 하고 초석 역할도 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빌딩과 금융맨으로 가득한 서울 여의도에서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용산구 후암동으로 둥지를 옮긴 손 대표는 바뀐 그의 명함만큼 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잘 다려진 정장 셔츠와 넥타이 차림에서 바뀐 캐주얼해진 옷차림이 혁신과 규제 사이를 고민하는 그의 위치를 상징했다.
손 대표는 이달 1일 토스인사이트 대표로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지난달 출범한 토스인사이트는 핀테크 업권을 중심으로 금융 관련 정책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이다. 금융산업 전반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토스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 토스인사이트는 설립 취지에 맞춰 금융 정책 전문가인 손 대표를 영입했다.
손 대표는 1964년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동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를 거쳐 2000년에는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9년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해 2008년부터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 2020년 12월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취임해 올해 2월까지 재직했다.
공무원 31년, 한국거래소 이사장 3년 2개월. 거래소가 민간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유관기관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손 대표는 34년을 공직에서 보낸 셈이다. 그는 공직에서 법 규제나 제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정부 정책이 가야 하는 방향도 잘 이해했지만, 늘 혁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몸에 맞는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한다.
손 대표는 “핀테크 태동기였던 금융위 담당 국장 시절에 토스의 창업부터 성장까지 쭉 지켜봐 오며 원래 관심이 많았다”며 “그러다 인연이 닿아서 (토스에서) 연구소를 만들고 대표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와 승낙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토스가 핀테크 회사에서 제도권 금융기관이 됐다. 좀 다른 모습을 지향하긴 하지만 은행과 증권도 있다”며 “토스인사이트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 재직 시절 손 대표가 핀테크 정책을 다룰 때 가장 어려워했던 건 규제였다. 손 대표는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천송이(전지현) 코트가 한류 붐을 타고 난리가 났었다. 해외에서도 이 코트를 구입하고 싶어 국내 상거래망에 접속했는데, 외국인들은 공인인증서가 없어서 결제가 안 됐다”며 “이런 발목 잡는 규제 때문에 한류도 안 되고 전자상거래도 안 된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많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도 창업을 했고,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규제 문제점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했었다”며 “이후 정부와 금융 당국이 나서고 은행의 협조도 끌어내면서 규제가 조금씩 풀렸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창조 경제가 가치였고, 그 흐름을 타고 토스는 살아남아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손 대표가 구상하는 토스인사이트의 방향은 금융 산업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혁신하는 금융기관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하는 업무다. 그는 “우리나라의 규제 환경을 선진화시키고, 혁신하려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리포트도 내고 정책당국에 건의도 하는 역할을 연구소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혁신과 규제 사이의 접점에서 이론적 배경도 제공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손 대표는 규제를 무시하고 가면 한 박자 빨리 가려다 열 박자 후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개 사고가 나면 재발을 막기 위해 더 강력한 규제가 들어오기 때문에 당초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규제가 양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혁신과 규제를 ‘발차기 묘기’에 비유해 설명했다. 예컨대 세 바퀴 돌아 발차기하는 묘기를 어떻게 멋지게 보여줄지만 고민할 때 발차기에 차여 다칠 사람은 없는지, 유리창은 깨지지 않을지 등 안전한 상태에서 묘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하는 게 혁신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여야 한다고 했다.
최근 규제개선 사례 중 주목하는 분야는 8월 금융위가 발표한 망분리 규제개선 방안이다. 우리나라는 금융데이터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해 상대적으로 해킹 등 보안사고에는 덜 취약하지만, 인공지능(AI) 엔진을 사용한 업무 응용 등에는 불편함이 따르고 있다. 내부에서 작업을 하더라도 외부 AI 엔진을 사용하려면 내부 데이터를 다시 외부망을 사용하는 다른 PC로 전송해 작업해야 한다. 손 대표는 “망분리 규제 개선이 이뤄지게 되면 AI 머신러닝 등을 가져와 내부망에서 실험도 해보면서 맞춤형 서비스 제공, 포트폴리오 최적화, 사기 방지 시스템 운영 등 해볼 게 많을 것”이라며 “금융업의 생산성이 대단히 높아질 것 같아 핀테크 업계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 산업 트렌드 분석도 토스인사이트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과제다. 그는 “마이데이터(개인이 이용하는 금융기관의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통합자산관리서비스) 시대 속에서 예전에는 못 해본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현재의 금융 산업 트렌드는 ‘비대면’, ‘맞춤형’이라고 짚었다. 그는 “금융상품이 예전에는 찍어서 나왔는데 최근에는 AI와 빅데이터 도움으로 맞춤형으로 나오고 있다”며 “AI가 개인의 패턴을 읽고 자산 구성과 관련한 개인형 맞춤 조언을 할 수 있는 자산관리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AI가 개인의 금융 고민을 관리하는 시대가 되면 규제와 충돌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이를 사전에 파악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어떤 접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지 정책당국에 건의도 하고 규제 당국자들의 부담도 덜어주는 역할을 토스인사이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바람은 토스인사이트가 금융산업 발전의 메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 처음으로 인터넷 은행이 나올 때 ‘메기’가 된다고 하면 ‘무슨 메기야’ 했는데, 그 뒤로 기성 은행들이 변한 모습을 보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며 “토스인사이트에서 하는 연구들이 전반적으로 금융산업의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맞춤형 금융서비스 시대로 간다면 ‘이런 것까지도 가능합니다’라는 것도 보여주고, 막상 가려고 하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이건 이렇게 풀면 좋겠습니다’하는 이야기도 할 것”이라며 “토스인사이트의 보고서나 건의사항이 금융기관과 업계로부터 주목받는다면, 제가 생각했던 목표의 100%, 200%를 달성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