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무관심과 금융권의 외면 속에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금융 사각지대’에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 플랫폼에 ‘외국인’, ‘대출’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외국인도 비대면 대출 가능합니다”, “국적 상관없이 2000만 원 대출 가능”, “여권만 있으면 돈 빌려드립니다” 등과 같은 문구와 함께 대부업체 온라인사이트가 안내된다.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효율적인 외국인 인력 활용이 국가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보다 실질적인 외국인 금융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본지가 국내 은행권의 외국인 전용 대출 상품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북은행의 ‘JB외국인근로자대출’과 BNK경남은행의 ‘K-드림(Dream) 외국인 신용대출’ 등 단 2개에 불과했다. 모두 지방은행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경우 △국민은행 ‘웰컴 플러스 전세자금대출’ △신한은행 ‘SOL 글로벌 전세대출’ △우리은행 ‘아파트론’ 등과 같은 상품은 외국인들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외국인 전용 상품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 상품은 부동산담보대출로 신용대출에 니즈가 큰 외국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다.
결국 돈을 빌릴 곳이 없어진 외국인들은 불법 사금융 등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출입국 외국인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백수웅 변호사는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외국인 중 제도권 금융회사의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면서 “이에 최근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의 피해 사례가 늘고 있어 제도권에서 이들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외국인의 경우 씬파일러(thin filer·금융이력부족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해도 외국인에 대한 대출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외국인 신용평가모델 고도화가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대출 연체 확률 등의 리스크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외국인 소득이 증가하고, 다양한 유형의 근로자가 유입되면서 은행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외국인 금융 수요에 적합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종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외국인은 저소득 근로자가 대부분으로 금융 니즈가 제한적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최근 외국인 근로자 소득은 내국인과 큰 차이가 없고 다양한 니즈를 갖고 있다”면서 “금융권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 연구위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관점 뿐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 문제로 외국인이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에 이민정책, 사회복지 차원에서 외국인의 금융 접근성 향상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외국인에 대한 정책금융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인이 우리 국민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정책금융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금융이 도입되면 민간금융기관에서도 보다 용이하게 외국인상품을 취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