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보사’ 1심 무죄 판결의 묵직한 여운

입력 2024-12-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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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TG-C’(국내 제품명 인보사케이주) 성분을 속여 정부 허가를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최경서)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0년 7월 기소된 지 4년여 만이다. 이 명예회장은 1심 결과와 소감을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답한 뒤 법원을 떠났다. 만감이 교차했을 법한 짤막한 소회다.

인보사는 사람 연골세포가 담긴 1액과 연골세포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형질전환 세포가 담긴 2액으로 구성된 무릎 퇴행성 관절염 치료 주사액이다. 코오롱이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국내 1호 유전자 치료제이자 세계 첫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다. 세계 9호 유전자 치료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과정에서 2액 주성분이 국내 식약처에 보고했던 ‘연골세포’가 아니라 종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신장유래세포(GP2-293)’ 성분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식약처는 4개월 만에 허가를 취소하고 약사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다. 이로 인해 국내 임상·판매는 중단됐다. 검찰은 이 명예회장을 약사법·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는 징역 10년과 벌금 5000억 원, 34억여 원의 추징 명령을 구형했다.

재판부가 이 명예회장 손을 들어준 것은 그 무엇보다 고의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발 과정의 착오 사실을 미리 알고 고의로 은폐한 게 아니라는 코오롱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은 과도한 추론에 기반했다”고 했다.

재판부가 대한민국 사회에 이례적으로 던진 질문 또한 무죄 결론에 못지않게 시사적이다. 재판부는 “국민 안전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식약처가 인보사의 제조와 판매를 중단시킨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런데 그 이후 미국과 우리나라의 조치와 진행 경과는 사뭇 다르다”고 했다. FDA는 인보사 안전성 등에 대해 과학적 관점에서 차분히 검토했다. 미국은 과학에 대해 성급한 제재의 칼을 휘두르기보다 합리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한국 사정은 정반대에 가깝다. 품목허가 취소 후 기소 남발로 대응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최종 판단이 이번 판단과 동일하다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이 소송의 의미는 무엇인지,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했다. 식약처와 검찰의 행정 편의주의, 기소 만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이다.

미국의 과학적 접근법은 생산적 결실로 향하고 있다. 인보사는 지난 7월 3상 투약을 마쳤다. 2년간의 추적관찰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시판 허가만 남는다. “세포의 기원을 잘못 알았을 뿐 안전성과 유효성에는 문제없다”는 소명을 받아들인 FDA가 임상보류 조치를 해제한 지 4년 만이다. 인보사가 시판된다면 기업만이 아니라 수많은 환자와 가족에게 큰 경사가 된다. 왜 한국과 미국의 혁신 대응이 이다지도 다른가. 국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 특정 기관만일 리 없다. 인보사 1심 판결의 여운이 자못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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