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이자 배교자였던 '인간 정약용'의 진실
역사적·개인적 맥락의 교차 통해 다산 조명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조선의 정보화 시대를 이끈 대표적 실학자로 평가받는다. 유학(儒學)의 자장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서학(西學)을 추구한 개혁적 사상가의 이미지가 그에게 있다. 이로 인해 그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유배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학자이기도 했다.
최근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펴낸 '다산의 일기장'에는 서학 및 천주교로 대변되는 서양 학문과 종교 앞에서 고뇌했던 정약용의 인간적 면모가 담겨 있다. 동시에 영조와 정조 시대를 맞아 정치·경제적으로 발전했던 18세기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 입체적으로 녹아있다.
3일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열린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정 교수는 정약용이 유학과 서학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했던 중간자적 위치의 학자였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나는 다산이 순수한 실학자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정체성은 유학과 서학의 중간에 있었다. 그 중간을 볼 때 다산의 진실과 그 시대의 진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간 다산을 설명했던 '애민'과 '청렴', '실학'의 코드로 일관하면 정약용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다산의 생애는 천주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천주교를 신봉하는 교인이었지만, 정치 생명의 연장을 위해 배교했던 인물로 비판받기도 했다. 천주교 지도자 검거에 앞장서면서 왕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다. 이 같은 다산의 이중적인 모습은 우유부단함에 대한 징표가 아니라 서학과 천주교라는 새로운 학문·종교와 대면한 18세기 조선의 어정쩡한 태도와 맞물려 있다.
'다산의 일기장'은 그러한 다산의 이중적 면모와 조선의 어정쩡한 태도를 주목한다. 30대 다산이 쓴 일기 네 편인 '금정일록(金井日錄)', '죽란일기(竹欄日記)', '규영일기(奎瀛日記)', '함주일록(含珠日錄)'을 토대로 정 교수가 바라보는 다산의 진실과 18세기 조선 지성사의 풍경을 정리한 책이다.
정 교수는 이 네 편의 일기에 학자이자 정치가, 천주교인이자 배교자였던 인간 다산의 진실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일기는 건조한 사실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의 나열 사이에 괄호 쳐진 행간에서 배교에 대한 이면과 그의 복잡한 내면 갈등을 읽어낼 수 있다. 네 편의 일기는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텍스트인 셈이다.
다시 말해 천주교 문제로 좌천당한 다산이 천주교 혐의를 벗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그의 일기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 같은 다산의 모순적 행동들을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대면한 책이 바로 '다산의 일기장'이다.
정 교수는 "18세기 조선은 서학을 유학으로, 유학을 서학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진동이 일었다. 서학을 유학 쪽으로 끌고 갈지, 유학을 서학 쪽으로 끌고 갈지 방황했던 시기였다"라며 "나는 다산이 서학과 유학의 논리가 마주하는 접점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한 학자였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기를 보면) 다산은 모순적 인간이었다. 이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유학과 서학의 접점이 이뤄지는 그 시대가 만들어낸 모순적 상황을 거시적이고 심층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정 교수는 "다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라며 "완벽하고, 무결하고, 애민정신의 화신으로서의 다산이 아닌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다산의 모순성을 발견할 때, 그의 행동에 내재한 의미를 우리의 가치로 바꿀 수 있다"라고 전했다.